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예기치 못한 일

오늘의 쉼터 2010. 2. 26. 09:03

    ◆ 예기치 못한 일 ◆                                                      -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긴 칼을 빼더니 대각선으로 여인의 몸을 베었다 - 섬마을에서 도시로 올라와 보니 자동차들 다니는 것이 신기해서 눈만 또랑또랑하던 일곱 살 소년 시절이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나이에 너무 소름이 끼쳐 옆자리의 숙부에게로 몸을 움츠리면서 표정을 살폈다. 돌부처처럼 앞 화면만 쳐다보고 앉아있는 숙부의 얼굴에 은막의 빛 테가 어른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구경만 하는 극장의 사람들이 모두 이상해 보였다. 얼마나 세월이 더 가서 그것이 꾸며진 극이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처럼 영화는 내게 처음 충격으로 다가왔다.   흑백영화 ‘시집가는 날’의 한 장면이었다. 그 충격적인 경험은 그러나 서서히 내 호기심을 부추기고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영국영화 ‘예기치 못한 일’을 볼 때처럼 영화 속에는 늘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갔다. 직접 가 볼 수 없고 접할 수 없는 꿈같은 이미지들이 눈앞의 대형 화면에서 펼쳐졌다. 포연이 짙은 전장戰場의 밤을 울리는 트렘팻 소리, 화산폭발로 바다에 가라앉아가는 파라다이스 같았던 섬, 로마시대의 역사적인 인물들로 나왔던 파란 눈의 배우들이 소년의 가슴에 우상으로 들어앉았다. 뿐만 아니라 ‘십계’ ‘벤허’같은 대작영화는 감성적인 소년에게 몽환적 꿈의 갈래를 넓혀주던 작품들이었다. 영국군 장교출신인 로렌스는 예기치 않게 조국 영국에 대항하는 아랍군의 선두에 서게 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스스로 사막의 영웅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즐긴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광활한 사막의 한복판으로 말을 달려 질주해 들어간다. 로렌스는 흰 아랍의상을 바람에 펄럭이며 자기도취에 빠져 ‘나는 영웅이다’ 외치면서 두 팔을 펼쳐 보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만 그곳에서 로렌스의 진솔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활지도 선생의 눈길을 피하느라 가슴 조이는 경우도 많았지만, 예기치 못한 일을 좇는 나의 영화보기는 도를 넘어서 재개봉관, 동시상영관까지 쫓아다녔다. 외국영화는 한 편도 거르지 않고 반드시 보아야 했다. 그리고 영화제목과 상영시간, 감독과 출연배우 등을 편편이 메모해두었는데, 몇 년 동안을 품에 지니고 다니던 조그만 수첩은 깨알 같은 글씨의 영화메모로 가득 채워졌다. 그 시절, 풍족하지 못해 고학을 하던 내게 호기심을 좇는 영화보기는 남모르는 즐거움이었다. 영화관을 들락거리는 것은 돈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모들이 알면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영화관에서 나오다가 예기치 않게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주인집 딸을 만났다. 어떻게 네가 영화관을 다 왔냐는 듯이 그녀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일 이후 혹시나 그녀가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었다. 성년이 되어 내 영화보기에서 비롯된 호기심은 더욱 현실적인 문제로 괘도를 수정했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경험을 모두 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사는 인생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되었다. 마지막 경험은 자살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은 세상과 영화를 혼동했던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편 생각하면 영화는 내게 동경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터 주었다. 해외에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그 시절, 무역회사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지사를 방문할 일들이 생겼다. 나는 예기치 않게도 스크린으로 만났던 모든 꿈의 영상들을 하나 둘 실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예기치 못한 일들은 인생에서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매 순간 일어나는 일들은 뜻밖에도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경우를 얼마나 예측할 수 있어서 대비하느냐는 삶에서 성패를 가름 짓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그런 이유로 내가 만들어가는 영화이고, 나의 소설 쓰기는 예기치 못한 일을 상상해가는 내 나름의 연출이 필요한 작업이다. 예기치 못할 일들은 예기치 못하기 때문에 늘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이젠 알 것 같다.   세월은 기억을 지워나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 나의 삶이고 내 글은 그 흔적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겐 그 옛날의 손때 뭍은 영화메모마저도 남아있지 않는 것을. <소설, 수필가 박 종 규>     ^*^*^*^*^*^*^*^*^*^*^*^*^*^*^*^*^*^*^*^*^*^*^*^*^*^*^*^*^*^*^*^*^*^*^ 영화는 내 생의 부족한 부분을 대리만족으로 채워주는 더 없는 친구였습니다. 풋풋한 시절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는 최고의 무대였지요. 예치는 못한 일을 떠올리니 정말 제가 요즘 생활이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침편지를 배달하고 있을 줄 꿈엔들 예측이나 했을까요. 좋은 일로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가족 여러분… 벌써 2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았습니다. 월급을 주는 경영자는 괴로운 달이고 받는 사람은 즐거운 달이 2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말을 맞아 좋은 사람과 같이 영화 한편 보며 예기치 못할 일들 경험해 보심도 좋을 듯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길 바라며 저는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 이 규 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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