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북한산을 오르며

오늘의 쉼터 2010. 2. 16. 11:17

    ☆북한산을 오르며☆ 하루건너 내리던 비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리고 있었다. 초가을 문턱에서 비를 맞으며 북한산 승가사 앞 약수터에 올라와 물을 마시며 산 끝까지 올라온 마음을 흡족해 하며 미소를 지어보았다. 목에 차오는 숨을 몰아쉬며 산을 내려다보니 난 에베레스트를 정복이라도 한 사람처럼 마냥 들떠있었다. 명절 연휴가 닷새나 되었지만 차례를 지내고 어중간한 날짜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집에서 지냈다. 명절과 큰일이 돌아오면 지래 겁이 나서 며칠을 마음고생을 하며 명절을 맞는다. 막상 닥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일하는 것이 겁부터 나니 더 나이가 들면 어찌 할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 증상은 찾아 왔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병. 하루는 물김치, 또 하루는 시장 그리고 음식 장만을 하고 나면 사흘이 흐른다. 차례를 지내고 다 떠난 자리는 어지럽게 어질러진 흔적들만이 나의 손길을 기다렸다. 시부모님이 세상을 뜨시고 나서 시댁을 가던 시골 발걸음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 살고 있는 동서들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습관이 남아 하루 밤을 우리 집에서 묵으며 차례를 지낸다. 몇 해를 그렇게 지내다 보니 동서들이 불편했나보다. 차례를 지내러 당일에 다녀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속으로는 내심 바라던 일이였고 언제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막상 동서들이 먼저 말을 꺼내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년 명절부터는 당일아침에 오기로 하였지만 한편은 잘되었다 생각이 들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슨 조화인지. 언제나 모든 준비는 내 차지였고 다 해 놓은 뒤에 오는 일도 힘들어하는 동서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애써 마음을 추슬러 본다. 명절 아침 차례를 지내고 모두 약속이 있다며 각자 집으로 떠났다. 어지럽혀진 부엌과 집안을 치우는데 딸과 함께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니 몸에서 어김없이 빨간 신호가 왔다. 반나절은 잤나 보다. 연휴3일째 올 추석은 동서들과 대화를 하며 변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명절 때 여행을 가거나 핑계를 대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사람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 이일 저일 마음이 편치 안아 잊으려 산을 올라 보기로 했다. 걷기를 죽기보다 싫어 한다고 잔소리 하던 남편이 산에 가자고하니 믿질 않는다. 항상 걷는 것을 산다는 각오로 운동을 하라고 매일 잔소리를 하던 남편이 우선 반겼다. 평소 자주 만나던 부부와 명절 인사도 할 겸 함께 북한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산 입구로 들어서니 꾸물거리던 하늘이 또 비를 내리고 있었다. 비가오니 그냥 집에서 놀자고 유혹을 하는 세분을 억지로 졸라 우비를 사서 입고 우산을 쓰고 산으로 향했다. 집 앞에 있는 슈퍼 갈 때도 차를 타고 다니던 내가 부득부득 우기고 산을 오르고 싶어 하니 이상히 여겼다. 그래도 남편은 대견해 하며 앞에서 웃음을 머금고 성큼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나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요사이 부쩍 나약해 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고 주위에서는 씩씩하다고 부러워하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열정이 식고 자신이 없어지는 것을 감지한 날부터 나는 우울함에 빠지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을 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산중턱쯤 갔는데 숨이 턱을 바쳐오며 곧 주저앉아 쉬고 싶었다.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쉬자고 하던 사람도 나였고 못 가겠다고 하던 사람도 나였는데 아무소리 안고 가니 쉬었다가 가자는 사람도 없었다. 속으로 “내가 먼저 쉬었다가 가자는 말은 오늘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고 가는데 뒤에 오시던 두 내외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당신 작년보다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 건강진단 한번 받아보시구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부부 보다 8년이 위신 부부의 대화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야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겠고 오늘이 있기 까지는 아내의 노고가 있었다는 말씀을 자주하시는 분이었다. 산을 잘 타던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픈 것일 게다. 내 속 마음을 모르는 남편은 앞서가며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고 불안한 눈치였다. 우산대를 내밀며 잡고 올라오라고 내밀었다. 괜찮다는 나를 앞서가며 몇 번을 돌아다보았다. 남편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로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체 그냥 묵묵히 갔다. 드디어 등 뒤에서 “쉬었다 갑시다!”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쯤 쉬어 가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쉬어 물도 먹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꿀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의 휴식 이었지만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래 인생도 힘들면 쉬었다 가야겠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온 인생길도 때론 휴식이라는 시간을 처방해야 한다는 작은 깨우침을 얻으며 또 걸었다. 가파른 계곡이 나왔다. 슬며시 남편이 또 우산대를 내 밀었다. 괜찮다고 하니 얼른 내 등 뒤로 오더니 나를 밀고 올라갔다.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를 문우들과 O교수님과 함께 간 일이 있었다. 산중턱에 있는 눈썹바위를 올라가는데 중간에서 못 올라가는 내가 안쓰러워 연세도 많으신 교수님께서 내 등을 밀며 올라가시던 기억이 났다. 강화도를 갔다 온 후로 내내 마음에 걸렸다. 왜 내가 자꾸만 약해지는 걸까. 어디를 가나 걷는 데라면 “못 걸어요!” 소리를 달고 사는 내가 한심했었다. 어렵게 그날도 정상에는 올라갔지만 그날의 아픈 기억을 만회 하고자 오늘은 말없이 산에 올랐다. 드디어 승가사가 눈앞에 보였다. 약수터 앞에 놓여있는 파란 바가지를 보니 이제야 목구멍에서 목이 마르다는 신호가 왔다. 오로지 뒤도 보지 않고 산 위에 있는 승가사 절만을 목표로 두고 올랐기에 가지고 온 물조차 마실 생각을 못했다. 숨도 안 쉬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고된 일을 막 끝내고 온 소가 물을 마시듯이… 산 아래를 내려 보았다. 오랜 만의 여유였다. 바람과 빗속에 나무들이 흔들리며 휘청거렸다. 태풍이 불어와도 끄떡없이 견디는 나뭇잎의 작은 생명의 의지를 보며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자식들과 남편과 세 끼 밥 해 먹으며 살아온 것처럼 오늘도 또 그렇게 산을 올랐다. 말없이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올라 온 목표나 지금까지 옆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사가 뭐 다를까. 굽이굽이 그려진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겨 보았다. 앞으로 남아 있는 인생은 가치 있는 참 삶으로 살아보리라 마음에 새기면서. 다음에 산에 올 때는 아름다운 경치도 즐기고 이름 모를 풀도 예뻐하며 흐르는 계곡물에 손도 적셔 보며 그렇게 산에 오르리라. 나를 시험해 보고픈 마음에 오로지 산꼭대기에 목표물만 향해 왔다. 옆에 흐르는 계곡의 물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녹음이 우거진 산세의 아름다움도 만끽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모든 삶의 공식은 동일하다는 각성과 함께 역시 하면 된다는 이치까지 깨달으면서… <수필가 이 규 자 > ^*^*^*^*^*^*^*^*^*^*^*^*^*^*^*^*^*^*^*^*^*^*^*^*^*^*^*^*^*^*^*^*^*^*^*^* 즐거운 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분주하고 피곤하던 과정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니 어느새 사라지고 떠난 자리는 아쉬움만 자리하고 있습니다. 뿌리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샘터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가족이라는 둥근 원을 생각해 봅니다. 가족 여러분… 이제 일상의 일터로 돌아 왔습니다. 부모님 찾아뵙고 자녀들의 인사를 받으며 즐거웠던 추억들 곱게 넣어 두고 또 한주를 시작합니다. 꿈 같이 보내신 즐거운 시간과 함께하는 하루되십시오^^* ♣ 이 규 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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