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대문 ♡
아파트 동 입구를 들어서면 나는 으레 공포를 느낀다.
20년 넘게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런 불안을 떨칠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따라 다닌다. 일층 양쪽의 우직한 현관문을 거느리고
가운데 거만스레 은빛 모자이크 문양의 엘리베이터가 버티고 있다.
또 현관 천장 에 있는 희미한 전구는 곧 주저앉을 것만 같은 위협을
준다. 혼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불안하다.
오직 내 앞에 문이 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두운 골목에서 누가
나를 따라올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으로 애를 태우며
지나기를 바란다. 속이 탄다.
그때 땡! 하고 들리는 맑은 벨소리는 기다리던 손님을 맞이하듯
엘리베이터 문으로 시선을 모은다. 안으로 들어서면 그때야 안심이 된다.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대문이 없음을 아쉽게 느낀다.
바꿔 생각하면 단지 입구가 얼마나 큰 대문인가?
그래도 그것은 낯설기만 하고 내 집 대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문 앞에서 잠시 머물며 들어가기 전 기다림에 대한 설렘을
그리워하는가 보다. 그나마 내가 사는 동, 라인 현관에 들어서면
대문이려니 마음속으로 정해 보나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를 부를 수도 또한 대답도 없는 삭막함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 일게다.
어릴 적 살던 옛집 대문은 큰 문 두 짝으로 잠겨 있고
그 문 중 하나에 작은 문이 달려 있었다.
큰문은 잠겨있고 사람들은 작은 문으로 드나들었다.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약간 구부려야
들어올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아버지께 대문의 작은 문은 쓰지 말고 큰문을 쓰자고 했다.
아버지는 아침에 밖으로 나갈 때 세상을 향해 겸손하게 인사를 하며
나가야 하기에 작은 문으로 나가고 들어올 때도 집으로 돌아옴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거라고 하며 굳이
큰 대문을 열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또 넓은 하늘이 보이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지라고 그러신 것일까!
그 말씀이 뇌리에서 맴돈다. 그 탓에 아파트 현관에서 느끼는 불안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대문에 대한 불만이다.
대문 열고 들어가 마당에서 맑은 하늘을 보며 마루를 올라 방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다.
유난히 높은 곳에 자리한 우리 집은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며
시원한 시야가 가슴속까지 펑 뚫리게 하였다.
밤이 되면 대문 밖에서 보는 제 3한강교는 더 없이 좋은 볼거리였다.
지금의 한남대교(1984년 개칭됨)를 처음에는 제 3한강교라 불렀다.
다리가 놓이고 보름달이 뜨던 밤을 잊을 수가 없다.
검푸른 하늘에 치자 물들인 듯한 둥근 달 아래 다리의 가로등과 물속에
누워있는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 어스름이 강물 속에서 비치던 달그림자.
달리는 차와 함께 자동차 불빛은 물속에서도 빛을 따라 한없이 떠나갔다.
그것을 보며 내 감정의 출렁임에 흠뻑 취하곤 했다. 지금도 무료한날
밤이면 베란다 넘어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 불빛을 한 참씩 바라본다.
어릴 때 다리를 통해 느끼던 그때의 느낌을 미처 추스르지 못하는 탓인지.
국경일에는 남산 위에서 불꽃놀이를 자주 하였다.
그것 또한 대문 앞에서 신나게 하던 볼거리였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지금 그 기억은 추억일 뿐이다.
큰댁은 건넛마을에 살았다.
큰집 대문은 큰문 두 짝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대문을 열 때마다 철커덩하던 소리가 나를 움츠리게 했다.
그래도 들어서면 마당한가운데 둥근 꽃밭이 있어 나를 반기는 듯 했다.
유난히 화초를 좋아하시던 큰어머니는 온갖 꽂을 길러 화단에는
언제나 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유난히 커다란 얼굴을 내미는 다알리아꽂부터 앉은뱅이 채송화까지
울긋불긋한 꽃 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맑은 하늘아래 피어있는 꽃에 묻혀 시간가는 줄 모르던
어린 날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릴 적집으로 올라오는 골목에는 길보다 낮은 지대에
집이 한 채 있었다. 길에서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집 건너를 바라보면 넓은 하늘이 눈앞에 펼쳐있으니
하늘 속을 거니는 착각을 했다.
그 길을 다닐 때면 길 아래 있는 집 처마 기와와 용마루 기와를
세어 보다 수를 잊고 다시 세어보고. 지붕 위에 작은 풀이 있으면
그것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길은 한적하고 양지바른 곳이다.
길 위에 있는 건넛집 담에는 제비꽃이 유난히 많이 있어
보라색 꽃을 꺾어 한줌 들고 앉아 좋아하였다.
친구들과 소꿉놀이도 그곳에서 자주 했다. 제비꽃 씨를 터트려
밥을 짓고 다른 꽃으로 반찬하며 놀았다. 높고 앞이 환한 하늘아래서
소꿉살림을 하던 세월이 있었다는 추억이 행복하다.
아파트에서는 각이진 공간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을 가진다.
답답함을 어쩌지 못하면서 그런데도 정해진 공간의 편리함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식구만이 드나드는
대문과 넓은 하늘이 언제나 반기는 그런 집이 그립다.
지금도 베란다 밖 하늘을 벗 삼고 자주 바라본다.
온 몸과 마음에 하늘의 손길이 더듬어 가는 것을 느끼며 살고 싶다.
<시인 이 희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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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바라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
늘 바삐 나갔다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오면 별 빛 속이 아닌 불 빛 속입니다.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 새겨보며 놓치고 사는
겸허와 정직한 삶의 태도를 점검해 봅니다. 늘 작은 문으로 다니며 겸손과
감사를 가르치신 작가님 아버님의 말씀을 담아 봅니다.
옛날 대문은 늘 열려있어 오가는 이들의 쉼터도 되고 정겨움의 열쇠도
되었지만 지금은 몇 겹의 자물쇠가 잠겨있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대문까지도 잠겨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가족 여러분…
날씨가 쌀쌀해 졌습니다.
영동에는 대설주의보까지 내리고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
빗길 안전운행하시고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분주한 명절맞이 차분히 준비하시는 하루 되십시오^^*
♣ 이 규 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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