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는 금은보화를 원하지 않는다.◆ .
교수형을 앞둔 사형수에게 왕은 무엇이건 들어 주겠다며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경우라면 무엇을 원했겠는가?
‘강남아파트나 용산 땅 이전등기’, ‘장관이나 국회의원’,
‘수십 수백억의 현금이나 금은보화’ 등등. 교수형을 앞두고
그런 것들을 원한다면 멍청하다고 손가락질 받지나 않을까?
그 사형수는 재빨리 대답했다.
“왕이시여, 저는 교수형으로 죽기보다 편안히 늙어 죽기를 원합니다.”
사형수에게 주어진 5분의 삶과 우리에게 주어진 50년의 삶은
시간적 길이 외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짧건 길건 살아 있는 동안 삶의 본질이나 중요한 가치들은 동일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어쩌면 나면서부터 이미 사형선고를 받아 둔 사형수 아닐까?
수십억 년 동안 지구 나이를 주관해 왔던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의 50년은 5초도 되지 않는 짧은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면서 부동산 평수를 늘리지 못해 안달하고 또 돈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권력을 잡고 부정축재 하는 모습을 본다면 사형수가
마지막 소원으로 돈이나 권력을 원했던 것을 보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마지막 소원을 편안히 늙어 죽는 것을 택했다면 우리는
현재 돈 권력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이미 획득했다.
문제는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허비하지 않느냐이다.
온갖 부를 누리고 살면서도 늘 인상을 찌푸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에 찌들려 살아도 언제나 웃음을 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돈으로 부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삶의 최대 가치인 행복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부자가 되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한다.
또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불평하기 보다는 가진 것이라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듯하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정직했고 맡겨진 책임을
다 했으며 세상에 유익을 주었다는 양심의 흡족함과 내면의 평화일 뿐이다.
금은보화를 원하는 사형수를 비웃기 전에 나 또한 그런 우(愚)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마음의 평화를 키워갔으면 한다.
< 수 필 가 양 태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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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삶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목표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린 항상 “선택” 이라는 숙제 앞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부와 가난도 선택이며 평화를 얻는 것도 말입니다.
늘 지혜로운 선택 앞에 행복한 삶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 여러분…
어제 내린 단비가 잠자는 대지를 깨우고 갔습니다.
촉촉이 젖은 땅 위로 금방이라도 새싹들이 움트는
봄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내 메마른 마음도 단비를 뿌려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가족님의 가정에 행복이 싹트는 하루 되십시오^^*
♣ 이 규 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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