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칸타타 ☆ 잠에서 덜 깬 새벽바다는 바람에 너울거리는 운무 아래로 쪽빛 속살을 감추고 있다.
이 파릇한 바다 냄새는 새벽 바다를 구르며 실려 온 수평선 바람 맛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남쪽 바다 작은 섬에서 낯선 주인네와 한 방에 들었다.
닿은 연이 있다면 내가 이 지방 태생에다 같은 성씨이며, 동생뻘이라는 것인데 주인
부부는 바닷장어탕에 쐐주 한잔하면서 도시 이야기나 해달라고 우릴 붙잡았다.
이 마을은 ‘여미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묵은 집은 계단식으로
들어앉은 집들의 중간에 있어서 바다를 끌어안은 작은 포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바닷바람이 제법 차서 깃을 세우고 옷소매를 여몄지만, 소매 틈새로 파고드는
찬 기운에 몸이 으슬으슬하다. 바다로 빗긴 육지의 끄트머리에는 노란빛
전등이 장대에 걸려 꾸벅꾸벅 밤을 여의고 있다.
육지로 올라온 해무는 전등주위에 동그란 빛 무리를 뿌린다.
모노톤 일색인 하늘, 바다, 육지의 새벽에 노랗게 번지는 빛 무리는 상서로운 기운을
연출해냈고, 바다가 연주해 낼 칸타타의 서막을 알리는 전조다. 그리고 조그만 교회의
십자가가 그 빛 무리에 잠겨 든 모습은 유럽 어느 해변마을의 풍경처럼 이국적이다.
지금은 새벽 5시. 조금 있으면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주낙에 낚시를 끼울 것이다.
우리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청자 빛 여명을 가르며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리라.
큰 바다가 주는 장쾌한 감동은 점점 물결처럼 밀려들 터이고.
“아침 바람이 찹습니다. 바다에 나가면 그 옷으로는 안 되야라.”
드르륵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보다 주인아저씨의 말소리가 먼저 등을 두드린다.
아내와 주인아주머니가 마당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열고 나온다.
아침잠이 많은 집사람이 용케도 시간을 맞춰 일어났다.
아내는 서울내기면서도 나 때문인지 이런 어촌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흙을 밟을 수 있는 섬이라고 추천할 때 먼저 가자고 보채던 사람이다.
주인댁이 주낙 준비물을 내오더니 아저씨는 생선을 잘게 썰어 낚싯밥을 만들고
아주머니는 낚시에 생선을 끼워 바구니 가장자리에 빙 둘러서 걸고 있다.
커다란 바구니 두 개가 주낙으로 채워지기까지는 반시간이 넘게 걸렸고,
바다는 운무가 많이 가셔지면서 곱다란 연둣빛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곧이어 황금색 햇살이 섬 뒤편으로부터 날아와 수평선 위의 구름에 꽂히면
찬란한 일출의 향연에 바다가 춤을 추리라.
우린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무덤 같았던 침묵이 무너지면서 이 집 저 집에서
아침 기침 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우리를 태운 배는 조그마한 통통배다. 키에 연결된 조종간은 녹이 슬었고,
배 바닥에 깔린 나무의 나이도 선주만큼 지긋하다.
포구를 벗어난 배는 넓은 바다로 질주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파도가 제법 커서 뱃머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더니 금세 새로 난
물길을 지우며 달려들곤 한다.
사실 나는 아무리 옥빛 바다라 해도 끝이 없는 수심이 두렵다.
바다 속은 쪽빛으로 절은 커다란 고독의 함정 같다.
하지만, 수평선을 향한 아내의 눈길은 의연하다. 푸른색, 옥색, 황금색, 흰색이
풀어진 아침바다의 향연에 취해 머리카락에 바닷말 냄새를 휘휘 날리며
아침 바람과 의연히 마주하고 있다. 멀리, 가까이 점멸되던 수많은 섬이 차츰
선명하게 다가서자 선주의 얼굴이 황금 햇살로 물든다. 그 빗살은 아내의 등 뒤에
서 있는 내 가슴으로도 망설임 없이 끼어드는데, 뒤돌아보며 아내가 햇살처럼 웃는다.
돌에 묶인 부표가 던져지는 것을 신호로, 바구니를 가득 채웠던 낚싯줄이
규칙적으로 바다에 빠져들면서 바늘 뜸을 뜨기 시작한다.
부표는 깊게 얕게 칸타타의 음표처럼 넘실거린다.
두 바구니가 다 비워진 다음에야 배는 다시 망망대해로 키를 돌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위 하늘은 바다 캔버스의 연속이다.
우리 전면에 부챗살처럼 펼쳐진 바다는 잔잔하게 너울거리면서 황금빛 비늘을 나부낀다.
한편으로는 짙은 쪽빛 바다가 청무우 색으로 바뀌면서 웅장한 바리톤으로 바다 속 깊은
속울음을 끌어올린다. 하늘을 이고 사는 바다의 내공으로,
아니면 웅대한 태양의 열정으로 이런 감당치 못할 장관이 살아 움직이며 들린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경이로울 뿐이다.
바다는 높고, 하늘은 차라리 낮다. 그곳은 우리가 위치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감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율리시스가 갇혔던 헤라 여신의 바다와 같지 않은가.
바다가 내 눈앞에 펼쳐 있는 한, 지금은 아내를 괘념치 않고 헤라 여신을
양껏 흠모해도 좋으리.
하지만, 우리의 쪽배는 하늘 캔버스를 빗금으로 갈라 물보라 터치를 남기며 달린다.
그 터치는 일출의 빗살에 불꽃으로 타오르리라.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조도대교를 넘어오면서 헤라 여신의 빛나는 실루엣은
아쉽게 내 가슴을 벗어나 짙어진 햇살 속으로 흩어져 간다.
본섬인 진도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라 맞잡은 아내의 손끝이 풀려나갈 때,
나는 조도의 하늘과 풀빛 바다가 연주했던 바다 칸타타로부터 비로소 멀어져 간다.
아스라이 수평선에는 또 다른 내가 남아
칸타타 선율 속에서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으리라.
<소설, 수필가 박 종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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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엄마의 품 같은 바다…
언제나 반겨주고 온갖 시림을 다 내 놓고 와도 싫다
내색하지 않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입니다
은 빛 물결 넘실대는 바다, 짙은 햇살 속으로 숨어들며 부르는 노래
작가님이 심취된 바다 칸타타를 들으러 떠나고 싶은 날입니다.
가족 여러분…
휴일 잘 보내셨는지요. 살 갓에 와 닿는 바람이 푸근해졌습니다.
한해를 맞는 날은 1월이고 한주의 시작은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화사한 봄의 기운으로 힘차게 출발해 보며
좋은 일만 그득한 하루 되시옵소서^^*
♣이 규 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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