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림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
2년 전까지 나는 병원을 5년이나 다녔어야 했다.
자동차로 왕복 2시간 그 일을 난 하루도 거를 수 없었다.
근면해야 했었고 눈물겨운 사랑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였다.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던 그곳엔 내 아버지가 누워계셨다.
당뇨 고혈압 뇌졸중에 의한 다리 마비, 치매 진행 20%
순식간에 발생한 골반부위의 욕창치료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물컹해진 욕창의 파인부위에 소독 솜을 메워 넣는 시술은
하루에 두 번씩 생죽음의 비명 소리가 내 귀청을 찢어 놓았다.
아버지께서는 그러다 숨이 넘어 가실까봐 내가 도착할 때까지는
고집스럽게 치료를 물리치고 계셨다.
6개월가량 사실 거라는 아버지께 매일 장어 회를 드시게 하면서
한 달 만에 새 살이 돋아나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뒤로 5년을 더 사시게 되었다.
그 후의 고통은 하반신에서 발생하는 생리 현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크게 우울해 하셨고
그 병원은 호텔급 노인센터로 의료 보험 적용이 안돼서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환자를 간병하시느라 함께 고통 받았을
늙으신 내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선택 이여야 했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큰 언니와 난 오전 오후로 나누어
크게 하는 일 없이 그저 자리만 지켜드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어나는 병원비에 돈을 열심히 보태던 형제들은
하나 둘 형편상의 이유로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지만 이해해야지…….
시간이 더 지나면서 호흡이 불규칙하여 곧 돌아가실 듯한
비상사태가 수십 번이나 있었고 그렇게 아버지는
길고 끈질기게 마지막을 버티고 계셨다.
갈수록 병원의 안락함에 순응하시면서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나는 아버지께 천수경과 회심곡 그리고 애창곡인
눈물 젖은 두만강을 계속 외우게 도와드렸다.
고맙게도 그때만 아픔을 잊으시고 짧은 수면에 드셨으니
지금도 그 음악들이 하늘같이 고맙다.
돌아가시기 3개월 전 쯤부턴 모두가 손을 놓고 싶어 하는
눈치들이었고 산소마스크 하나 씌우는데도 형제들 앞에서
의사가 눈치를 보며 설명을 했어야했다.
어떤 결정이 내려졌고 형제의 이름들이 각각 흩어지자 난
조용히 의사를 찾아가 다시 아버지를 살리는
주문을 하고 입단속을 시켰다.
어차피 그 들은 아버지가 어떤 조치를 받고 있는 것까진
나날이 신경을 안 썼으니까
'살 수 있는 데까지 살다 가세요.' 그 때의 내 마음이었다.
하루 한 두 시간 약 기운을 빌어 정신이 가물가물 돌아오시면,
우리 열 형제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살리고 싶어 하는지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하며 존경스러운지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지를 쉬지 않고 읊어드렸다.
조잘대던 나에게 그때 지어주셨던 슬픈
그 미소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된다.
결국 나마저 기억해 내시지 못하고 눈물 한 줄기 주룩
흘리시더니 초점 잃은 눈을 스르르 감으셨다.
멈춰있는 아버지의 가슴에 서러운 눈물 묻혀가며 생전에 즐겨 부르셨던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을 나지막이 불러 드렸다.
옆에서 같이 지키고 서있던 다른 간병인들도 함께 부르며
아버지와의 이별을 애도해주셨다,
천사 같은 봉사자들...
한 집 두 집 가족 친지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땅을 구르며 오열하는
모습에 난 오히려 무척 담담해 했다는 것을 남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돌아가신 뒤의 아버지는 내 아니어도 각별히 모시는
분들이 많아서 내 설자린 없는 듯했다.
이승의 작별 의식을 다 치룬 마지막 날 기림사 오솔길을 찬찬히
내려오면서 생전에 나에게 일러주셨던 말씀을 떠올려봤다.
“막내야 내 죽어도 놀래지 마라. 내가 지금 죽는 다케도
무신 원망이 있겠노 해 볼 거 다 해봤는데, 잠자듯이 죽는다믄 그마이
두려워 할 일이 아이다. 꿈속에서 우리 어무이랑 오래살고 싶었다.
백설 같은 니 새끼 고노마를 사랑으로 키우고, 남편을 니 맘 같이
이해해줘야 한데이, 돈으로 하는 효도가 제일 숩다…….
사돈어른께 잘 해드려라.“
그렇게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소중한 말씀 남기시고 먼 길을 떠나셨다.
아버지 기일 날 아버지 생각에…….
<시인 한 신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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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부모를 모시는 가정은 한 번 쯤은 겪었을 일,
누구나 떠날 때는 꼭 한번은 거쳐야 하는
병마는 어찌 할 수 없나 봅니다.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 가슴에 새겨보는 아침입니다.
아버님을 떠나보낸 아픈 마음 같이 나누어 봅니다.
작가님이 진정 효녀이십니다.
가족 여러분…….
저부터도 살아가는 일에 바빠 부모님을
자주 못 뵈었습니다.
가족님이나 저 또한 마음은 있지만 부모님이라
이해하시리라 믿고 미루었던 전화 한통 드려 보면 어떨는지요.
매서운 날씨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이 규 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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