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오 지나 세시까지◈
하얀 서리꽃에 햇살이 스미어 유리알 같은 해맑은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동짓달의 태양 고도는 앞산 제일 높은 봉우리랑 아옹다옹
키 재기 하며 논다.
동남향으로 열린 발코니 옅은 파랑 페어그라스를 넘어 거실에 쌓이는
햇볕 가만히 들춰보니 온통 북새통인 세상이야기를 가득 담아왔다.
아이. 엠. 에프가 어느 나라를 통째로 삼켰단다.
그 이웃 나라도 금융위기의 홍수를 피하지 못할 거라며 무슨 꼬부랑글자
제목을 가진 신문이 게거품을 물며 떠든단다.
다시금 한 겹 쌓이는 햇살, 동지섣달엔 늘 낮은 고도의 태양 덕분에
거실 구석구석 일광욕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참 잘 지은 집은 아마도
이런 집일 거야 쌓여가는 하얀 햇살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실렸다.
멀고도 가까운 어느 나라 대통령 선거이야기, 부러운 장면도, 혀를 끌끌
차야 할 장면도 깨알처럼 새겨져 여름날 비오기전 개미의 긴 행렬처럼
꼬불꼬불 흔들리며 걷는다.
햇살은 기회를 놓칠세라 자꾸만 쌓이고 겹겹이 포개지는 이야기들
훔쳐보느라 시력 나쁜 눈이 혹사를 당한다. 먼 어느 나라에서 피나게
갈고닦은 어여쁜 소녀, 피겨스케이팅 세계대회 일등이란다.
멋진 스케이팅 장면까지 배달해준 햇살이 고마워 가만히 보듬었더니
어느새 빠져나가 어깨위에서 팔 겯고 곁눈질로 눈싸움 하잔다.
층층이 쌓여가는 소식들 촌철살인이라 했던가? 담지 말아야 할 이야기도,
담아도 좋은 덕담들도 한 겹 또 한 겹 쌓아가더니 서녘으로 달리던
태양의 심술보가 도졌다. 거실 가득 쌓아놓은 하얀 빛의 갈피를 뒤적이며
한 겹 한 겹 거두어 간다.
복잡한 세상사, 환한 미소로 반겼던 따뜻한 이야기, 아이. 엠. 에프도
어느 나라 대통령 이야기도 곤한 잠에서 깨어 저 갈 길 간다.
일광욕을 마친 방바닥엔 뽀얀 먼지만 행여 서운할세라 앞산 그림자
부둥켜안고 되찾은 고요, 다시금 찾아온 안온함을 담아 세상에서 제일
편한 보금자리를 되돌려 주려 애쓴다.
되찾은 평화, 한가로운 괘종의 흔들림, 뻐꾹새 울 시간이 가까워 오나 보다.
앞산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2008년 동짓달 어느 날
<<시인, 수필가 이기은>>
***********************************************************
동짓달 어느 날 점심 지나 조금 한가해진 시간에 거실 깊이 찾아든 햇볕을
받으며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접하며 느끼고 생각했던 작가님의
마음을 마치 따라 하기라도 하듯 커튼을 젖히고 거실에 놀러 온 햇살을
한가운데 앉히고 모과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편안한 자세로 신문을
펼쳐듭니다.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보이는 큰 제목에 눈길이 머뭅니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기사일까? 하고 살펴보면 늘 그렇듯 어수선한 정치
예기와 사건 사고들이 나를 기다립니다.
싫증 난 내용에 대충 훑어보고 신물을 접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브라운관을 통해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가슴 뭉클한
미담보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좋지 못한 사건들이나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 면에 중점을 두고 전해지는 뉴스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오히려 보도를 함으로 범죄를 모방하게 되고 허영과 사치를 부추기게
되는 기삿거리를 볼 때면 뉴스를 보고 듣는 것조차 피하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는 시간 시간 전해지는 뉴스가 추운 올겨울을 훈훈하게 데워줄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우리 곁에 찾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하루를 여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른 새벽 낙엽을 쓸어 담는 미화원 아저씨의 손이 왜 그리 추워
보이는지요?
내일은 잊지 않고 면장갑이라도 한 켤레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국보 가족님!
오늘도 삶의 여유를 찾아가는 넉넉함으로 고운 추억하나 가슴에 심는
멋진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김미옥 드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