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작은 집-1
언덕위에는 아카시아 꽃이 하얀 안개처럼 가물거렸다.
코끝에 일렁거리는 아카시아 향기가 풋풋하던 처녀시절 예민한 후각을
터트려 차창의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향기에 온 몸이 취했다.
속초를 다녀 올 일이 있어 영동고속도로를 탔다.
무심히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둔 순간 눈에 익은 동네가 시야에 들어왔다.
유리창 너머로 스쳐지나간 그곳이 아련히 추억에 젖어들게 한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문득문득 떠오르던 이곳이
벌써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나 보다.
배움에 목마르던 어렵던 시골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일이 있다.
정식 중학교가 아니고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고등공민학교였다. 형편이 어려워 도시 학교를 갈 수 없던 아이들이
약간의 수업료만 내고 다니던 학교였다.
학교가 있던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 때는 시골생활 형편이 초등학교만 나오면 농사를 짓거나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야 했다. 지금처럼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부시킬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었고 아이들도 부모님 말씀을 잘 따랐다.
도시에 살던 나는 학교를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싱그러운 아침햇살을 받으며 다니던 버스 밖의 시골 길은 늘 경쾌했다.
온 몸을 흔들어 대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는
매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렸다.
학교를 들어서면 부지런하던 아이들은 일찍 등교하여 운동장과
교무실 청소를 말끔히 해 놓고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보는 선생님들이 그렇게나 반가웠을까.
학교는 작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었고 학생은 백여 명,
교실 세 칸과 교무실, 화장실, 사택 한 동이 전부였다.
선생님들은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지를 기다리는 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가정 과목과 서무과 일을 맡았으며 방과 후 짬짬이 주산을
가르치며 취업도 함께 지도 하게 되었다.
가정실습시간이 되면 집에서 가지고 온 재료들로 실습을 하였다.
음식을 만들어 학생들과 선생들이 나누어 먹던 즐거움을
도시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한 학년이라야 고작 한 반 뿐이었으니까.
장미넝쿨이 우거진 운동장 옆 들판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많이도 피어 있었지. 찔레꽃 밑에 올라오는 찔레대를 꺾어 먹던
비릿한 냄새와 상큼한 맛은 지금도 입안에 가득한 듯하다.
늦은 봄이면 온 산이 아카시아 꽃으로 뒤덮이고
그 향기에 킁킁거리며 가을을 맞곤 했지.
가을이 되어 체육 대회가 열렸다.
전교생 백여 명과 선생님 일곱 분은 땀 냄새 풍겨 가며 운동장을 누볐다.
상품은 시골에서 필요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채반이나 소쿠리,
도시락이 상품으로 걸렸다.
나는 그날 행운 상으로 큼직한 채반을 선물로 받았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이었던지...
체육대회가 끝나고 앞 동네 가게로 선생님들의 친목 뒤풀이로
먹을 막걸리를 사러 가게 되었다.
신작로 위에 가냘프게 피어 있던 코스모스가 밝은 달빛에 청초해 보였다.
추석 다음 날이라 보름달이 하늘에 높게 걸려 있었다.
속마음도 들켜 버릴 정도로 밝게 비추는 달도 보고
달빛 아래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J 선생께서 걸음을 멈추셨다.
(화요일 두 번째 글 나갑니다.)
<수필가 이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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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러분...
최대명절인 한가위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가족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월요일입니다.
내내 미소를 잃지 않은 날 되세요.
임수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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