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가을에 부치는 편지

오늘의 쉼터 2009. 8. 21. 08:50



    ◈가을에 부치는 편지 ◈ 한 통의 편지를 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 줄이 없지만, 수취인도 주소도 없이 가을에게 부치려고 합니다. 가을 오면 이유 없이 가슴이 아려 목적 없이 들길을 헤매고 바스락거리는 가랑잎 소리가 좋아 길 없는 산속을 하릴없이 걸었습니다. 산자락에 흐드러진 쑥부쟁이 예쁘고, 노랑 저고리 곱게 여민 들국화도 고왔습니다. 꿈 많던 어린 시절 여동생과 함께 아버님 드실 술 담그려 대바구니 옆에 끼고 들국화 꽃 따던 생각이 납니다. 논두렁, 밭두렁, 뒷산 언덕배기 지천으로 널려 있던 들국화 한 송이 한 송이 따 모아 대바구니에 담으면 고운 향은 바구니가 좁다고 넘실넘실 가을 들판 가득 퍼져 나가곤 했지요. 담 모퉁이엔 늙은 호박 오후의 햇볕 쬐며 졸고, 여름 뜨거운 햇볕에 붉게 탄 대추 달콤한 향내 꿈결처럼 흘릴 때 장독대엔 때늦은 채송화 곱게 피었습니다. 사랑에 눈뜬 고추잠자리 한 쌍 파란 물감 속을 헤엄치고 여름 내내 포동포동 살찌운 제비는 고향 찾을 준비 하느라 힘찬 날갯짓을 합니다. 황금 물결 남실대는 들녘 한여름 땡볕에 그득하니 속 살찌운 벼 이삭 힘겨운 세월의 무게 바람 고여 지탱하며 결실의 포만감에 가슴 부풀어 거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무너진 돌담 그늘 졸리운 멍멍이 갑자기 나타난 솔개 그림자에 놀라 허공을 향해 앙증맞은 울음 토하며 나즈막이 엎드린 초가로 달려가고 긴 이랑 가득 메운 사울아비 장창 같은 붉은 수숫대는 젖어오는 노을빛에 긴 몸을 곧추 세워 머언 산자락에 그리움의 눈길을 보냅니다. 옆집에 살던 혼기 가득 찬 처녀는 추색이 물들면 글방도련님 만나 시집갈 꿈에 부풀어 사립문 나들며 들뜬 가슴 달랩니다. 가을은 메마른 가슴에 시심을 돋우고 여린 가슴들을 사정없이 할퀴며 기어이 아린 눈물 만들어 붉게 물든 산하에 애잔함을 보탭니다. 겹겹이 쌓인 초가 위에 단정하게 앉아있는 옥빛 투명한 박, 새색시 속살 같은 고운 마음 으스름 달빛 아래 하얀 꿈 키우며 제 살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 사랑 가득, 행복 가득 넘치게 담을 꿈에 가을밤이 깊은 줄 알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깊어 가는 가을밤 한 통의 편지로 고독을 달래 봅니다. <<시인, 수필가 이기은>> ***************************************************************** 가마솥보다 더 뜨거운 열기로 사람을 지쳐가게 했던 더위는 내리는 비에 기력을 잃어가고 실바람불어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아침입니다. 이 비 그치고 나면 가을 냄새 나는 하늘은 높아지고 들판을 무리지어 나는 잠자리들의 춤사위도 빨라지리라 생각해 봅니다.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지요? 왠지 모를 고독에 빠져보고 싶고 누군가에게 편지 한 장 써 보내고 싶은 마음, 우리 님들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국보 가족님! 더위 속에 또 한 주가 흘러가고 처서가 들어 있는 주말을 맞이합니다. 가을을 향해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이번 주말에는 가슴으로 그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편지나 고운 시 한 편 써보시고 욕심 없는 마음에 행복만 채워가는 아름다운 주말을 보내시길 빕니다. 한 주간 수고하신 가족님! 미소 짓는 모습으로 월요일 뵙겠습니다. ♣김미옥 드림♣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


 

'종합상식 > 세상사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길에 만난 연꽃처럼   (0) 2009.08.25
뭐해 보고 싶어  (0) 2009.08.24
나눔의 행복  (0) 2009.08.20
잃어버린 젊음, 26년  (0) 2009.08.19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0) 2009.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