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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젊음, 26년◈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싸는 8월 중순, 나는 원호병원을 나서면서
뭔가를 놓고 온 듯싶은 아쉬움과 미련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언뜻 눈가에 비치는 병원 건물의 흰색과 대비된 환자와 가족들의 핏기 잃은
표정들이 꼭 을씨년스런 나목(裸木)처럼 느껴져, ‘이곳이 진짜 병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더욱 주눅이 들게 만든다.
다시 말해 원호병원 5층에서 머문 15분간의 시간이, 나를 갑자기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얼마 전, 나는 메일을 한통 받았었다.
메일에는 서울의 모 K대 3학년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내가 근무했던
철원의 모 사단 수색대에서 근무 중 불의의 사고로 한국보훈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 중인 중상이용사(1급 장애인)이며, 2001년 이미 등단한
시인인데 국보문학에 글을 싣고 싶어 작품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학도 후배고, 군대도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원호병원에
문병 겸 찾아갔는데, 나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창백한 얼굴, 굳어버린 입술로 미소를 띠려고 억지로 근육을 움직이며
반갑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데, 앙상한 손을 마주 잡은 나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내가 대학 선배라고 하니까, 꼭 어린애 혼자 캄캄한 집에서 시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쳤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어눌하게 말을 하는
자기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실타래처럼 술술 풀어헤친다.
26년 동안 한 번도 병실을 떠난 적이 없는 마흔 몇 살의 남자,
26년 동안 한 번도 침대를 벗어난 적이 없는 9년 차 시인,
20대 초반의 나이에 열정과 희망을 뒤로 한 채, 인생의 황금기를 병원과
침대에서 보낸 젊은이의 옛 모습을 그리려 했지만, 나는 포기했다.
젊음이란 무한대의 가치가 있는 보고(寶庫)가 아니던가?
내가 어찌 저 젊은이의 26년을 내 입맛대로 표현할 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병원을 나서면서, 나는 ‘삶의 무대는 가면축제의 소용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저기 병상에 누워있는 시인은 아마도 움직일 수 없는 육신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자유로운 정신과 명상을 통하여 “가면 축제‘를
벌이는 회오리바람이 아닐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영(靈)적 세계를 지향하며 생명의 노(櫓)를 저어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시(詩)로 승화를 시키는 것은 아닐까.
심층 깊은 곳, 그 넓고 해맑은 곳에서 26년 동안 ‘고독한 절대자’가
되어버린 어느 시인을 생각하며, 짧은 글을 쓰다.
<< 시인, 수필가 임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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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눈물짓게 하더니 오늘은 젊음을
잃어버린 26년을 병상에 누워 지내는 가슴 아픈 어느 시인의 사연이
눈가를 촉촉이 젖어들게 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라는 말이 새롭게 새겨지는 아침입니다.
저 또한 십수 년을 백혈병과 싸우며 갖가지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매다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사람이기에 건강의 중요성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자꾸만 방심한 마음은 그때의 일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국보 가족님!
살아서 오늘이라는 하루를 선물로 받은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요?
우리 님들은 작고 사소한 것에 마음 다치거나 목숨 걸지 말고 건강함으로
삶을 지탱해 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님들이 되어 웃음으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가을을 기다리는 가족님들의 가슴에 기쁨과 사랑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김미옥 드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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