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미나리 ◈
며칠 시골에서 머물렀다. 서늘한 5월 초순의 쾌청한 날씨. 중천에 뜬 달,
처연한 보름달 빛은 초년 과부의 차가운 낯빛 같았다.
낮에는 은행나무 그늘이 좋은 금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책을 보다가
서늘해질 무렵이면 잠깐씩 스무 평 남짓 텃밭을 가꾸었다.
오랫동안 쟁기질을 하지 않은 채 묵힌 밭에는 잡초만 그득했다.
산에서 날아온 씨앗으로 산뽕, 찔레, 이름도 모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삽으로 잡초를 조금씩 밀어낸 뒤에 흙을 파 뒤엎고, 한 평쯤의 미나리꽝을
만들었다. 이태 전, 어머니가 동네 논두렁 밑, 개우랑에서 돌미나리 뿌리를
캐다가 밭에 옮겨 심었던 것이 용케도 살아남았다.
얼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쑥 뜯으려고 밭을 어슬렁거리던 아내가 돌미나리
뿌리를 발견했다고 삽으로 떠 주기에 밭에다 정성스레 심었다.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밭에서 살 수 있을는지, 그러나 그런 기우는 기우일
뿐, 올봄에도 노쇠한 어머니가 주전자로 물을 길어다가 주어서 키운 반 평쯤의
미나리는 제법 많이 뿌리가 번졌다. 제때에 물을 주면 마른 밭에서도 능히
키울 수 있다는 뜻, 미나리꽝을 더 늘렸으니 어머니가 물 길어 주기에는 조금
벅차고 힘들 터, 내가 짬짬이 고향 갈 때마다 호스로 물을 주면 잘 자랄 수
있으리라.
오랜 가뭄으로 앵두나무 잎새가 시들었는데도 밤이슬 맞은 열매는 큰애기
젖꼭지만큼이나 자라 탐스럽다. 샘물이 마를까 걱정하면서도 풀섶에 있는
나무뿌리에 긴 호스를 연결하여 물을 두어 차례 주었다.
보름 뒤인 5월 말쯤이면 빨갛게 익은 앵두를 딸 수 있으리라.
앵두를 딸 때 발밑을 더 조심해야겠다.
십 년 가까이 가꾸지 않은 묵정밭에서는 율무기 독사가 서식하고 있어 풀 속이
늘 두렵고, 발밑이 무섭다.
이태 전 신한재 산에서 누나, 아내와 함께 캐다 심은 참취가 제법 많이 번졌다.
밭에 심기만 했지 가꾸지도 않았는데도 말라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고
용케 살아서 봄에 어린 잎새를 내밀었다.
잡초를 뽑아주던 아내가 참취 잎을 뜯었다.
개망초 잎, 머위와 함께 삶아서 나물로 무치니 제법 먹을 만했다.
송홧가루 날리는 토요일 아침에 감나무골 이종 큰 형네에 들러서 고추 묘
30포기, 가지 묘 6포기를 얻었다. 윗밭에 옮겨 심은 뒤에 물을 듬뿍 주었다.
이른 봄철에 종조모(87세, 독거)가 대천시장에서 산 어린 상추 묘 열댓 포기
를 얻어 오신 어머니. 내가 텃밭에 옮겨 심었더니만 이제는 제법 많이 컸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어머니가 주전자로 물을 떠다 주어서 키웠다는 뜻.
우리 내외는 잎사귀를 뜯어서 쌈을 싸 먹었다. 이가 없는 노모는 한 입도 잡수
시지 못하고, 아들 며느리 먹는 모습만 바라보셨다. 서울로 오는 길에 한주먹
더 뜯어 왔다.
시골에서는 5월 초순인데도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날씨가 뜨거웠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 서울에서는 세찬 비가 내린다. 시골에도 흠뻑 내려서
묘판의 모가 부쩍부쩍 자랐으면 좋겠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도 단비는 반가운 손님, 어머님의 품 같은 대지를
흠뻑 적셨으면 싶다.
<< 2009. 5 . 11. 월요일. 수필가 최윤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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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환 작가님의 전원일기를 훔쳐보았습니다.
요즈음 주말이면 아이들 산 교육장으로 그리고 식구들 농약 뿌리지 않은
안심 먹거리를 키우기 위해 주말 농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가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한 평 남짓의 텃밭에 상추 심고, 고추 심고, 부추 등을 심어 여름 내내 가족이
정성 들여 가꾸면 푸성귀 돈 주고 사먹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자라지요.
미나리꽝 가득 채운 물속에 장대처럼 자란 키를 감추고 파란 잎 조금만 내보
이는 물미나리에 비해 산기슭 습진 곳에 자라는 돌미나리는 비록 키도 작고,
오동통하지도 않지만 상큼한 향기가 막힌 코를 확 뚫어줄 만큼 진하지요.
어릴 적 조막손으로 조금씩 뜯어오면 맛나게 무쳐주시던 어머님의 손맛이
생각나는 돌미나리 이야기, 연세 드신 어머님 힘드실까 주말이면 달려가
텃밭에 물 주어 푸성귀를 가꾸시는 작가님의 효심 가득한 글 향으로 한 주를
시작합니다.
국보 가족님!
새로이 시작되는 한 주 건강 행복한 날들 보내시고, 계획하신 일들이 순조
롭게 이루어지는 미나리 향기처럼 상큼한 시간들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이기은 드림♣
![](https://t1.daumcdn.net/cfile/cafe/132F920C4A1C97AB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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