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란 기억◈
내가 생각을 해도 참 신기한 기억이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배웠으련만 그가 누구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거니와
어느 곳인지도 기억이 없다. 책을 본 기억조차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나는 천자문을 줄줄이 외운다.
물론 천자문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긴 하지만…….
중학교 때인가, 어떤 경로로 이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새겨져 있는지
궁금하여 어머니께 물은 적이 있었다.
말씀인즉 내가 말을 배울 때부터 할아버지는 당신 무릎에 앉혀놓고
천자문을 읽어주니 곧잘 따라 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만 세 살이 안 되어(32개월)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은 전무하다. 다른 아이 같으면 기억
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가 아니었을까? 자라는 것도 더디고 해서 좀
늦되는 아이였다고 어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말도 빨리 배운 편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외숙모님은 나를 볼 때마다 “어이구, 징그럽게 보채고
울어대더니……” 어머니가 친정 나들이 때 나를 데리고 가노라면 무척이나
낮 가림을 하여 어머니 속을 썩였단다.
이런 얼뜨기 같은 아이가 어떻게 말 배움과 함께 천자문을 따라 했으며
그것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글 자체를 배우고 깨우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늘~천, 따~지하면서 그에 대한 음률만을 익혔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소리의 높낮이와 장단을 맞춰 가며 천자문을 읽어가는
할아버지의 소리 가락을 따라 외웠을 것이다. 아마도 이 천자문의 음률은
내 머릿속에 간직한 생의 최초 기억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소리나 노래에 좀 민감한 편이다.
아침잠을 깨우며 종을 울리는 “두부 사~려!” 하는 청승맞은 소리도 그렇고,
구성진 목소리로 젓갈이라는 젓갈을 모조리 읊어대며 골목길을 누비는
젓갈장수의 소리는 차라리 음악이었다.
그런 연으로 어렸을 때부터 먹어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젓갈종류는
꽤 많이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기억 중에는 해방된 이듬해에 조직된(1946년 10월 9일)
“조선민족청년단”의 행군 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아침마다 동내를 누비면서 청년단이 부르던 그 군가의 가사는 물론
노래도 기억하고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이씨조선 500년/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이 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청년단의 모습을 찍은 필름을 어느 TV에선가
보여줬는데 정말 깊은 감회로 본 기록사진이었다.
이상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기억들의 단편이다.
<<수필가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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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간에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합니다.
아까시 향기가 방안에 들어와 밤새 묵은 공기를 향기롭게
바꾸어줍니다.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漢子도 한두 번 듣고 외우면 머릿속에
기억되던 젊은 날이 있었건만 중년이 지난 지금은 오늘 들으면 내일
잊어버리고 어제의 일조차 깜박깜박하니 번뜩이던 머리도
세월이 가면 둔해지나 봅니다.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지요?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기억해야 할 기억들은 쉬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좋을 좋지 못한 기억들은 더 오래 간직하고 있으니
망각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늘 머릿속에 맴도는 별나고 아름다웠던 기억 하나 꺼내어
미소를 지어보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도 참 좋겠다 싶습니다.
국보 가족님!
우리 님들은 스치는 인연이어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
소중하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으시고 오늘도 하루치의 삶이 풍성하고
행복하시기만을 기원합니다.
♣김미옥 드림♣
![](https://t1.daumcdn.net/cfile/blog/120F5A174A12C33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