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신라

43. 희강왕(僖康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7. 23:15

 

 희강왕(僖康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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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강왕(僖康王)



※ 생존기간 : (?~838)

 

※ 재위기간 : (836~838)



※ 본문설명

신라 43대 왕으로서 성은 김(金)이며 이름은 제륭(悌隆) ·제옹(悌勒)이다.

원성왕(元聖王;재위 785-798년)의 증손자이며, 이찬(;2등급) 이찬 예영(禮英)의 손자이며,

 이찬(;2등급) 김헌정(金憲貞)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포도부인(包道夫人)이고 비는 대아찬(大阿飡;5등급) 충공(忠恭)의 딸 문목부인(文穆夫人)이다.
흥덕왕(재위 826-836년)이 후사(後嗣) 없이 죽자, 흥덕왕의 사촌동생인 균정(均貞)과 5촌조카인 제륭(;희강왕)이 서로 왕위를 다투게 되었다. 제륭의 6촌인 시중(侍中) 김명(金明:민애왕), 아찬(阿飡) 이홍(利弘), 배훤백(裵萱伯) 등의 도움으로 삼촌을 받든 아찬 우징(祐徵; 신무왕)과 조카인 예징, 김양 등을 궁궐에서 다투었는데, 김양은 화살에 맞아 우징(祐徵)과 함께 도망하고, 균정은 살해되었다. 김균정은 제륭의 아버지인 김헌정의 형으로서 제륭의 삼촌이다.

837년 정월에 사형죄 이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왕의 죽은 아버지를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하고, 어머니 박씨를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삼았다. 시중 김명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삼고, 아찬 이홍을 시중으로 삼았다. 4월에 당나라 문종이 숙위하던 왕자 김의종(金義琮)을 돌려 보냈다. 아찬(阿飡) 우징(祐徵; 신무왕)은 그의 아버지 균정(均貞)이 해를 입은 것에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했는데, 김명과 이홍 등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5월에 우징이 화가 미칠까 두려워 그의 처·자식과 함께 황산진(黃山津) 어구로 달아나, 배를 타고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장보고(張保皐)에게 가서 의탁하였다. 6월에 균정의 매부 아찬 예징(禮徵)이 아찬 양순(良順)과 함께 도망하여 우징에게 의지하였다. 당나라 문종이 숙위하던 김충신(金忠信) 등에게 비단을 차등있게 내려 주었다.

838년 정월에 6촌 재종인 김명(;민애왕)과 이홍이 반란을 일으켜 측근자를 살해하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능은 경주의 소산(蘇山)에 있다. 그 뒤를 이어 사촌형제인 김명이 민애왕이 되었다.



※ 본문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본문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synnic.com.ne.kr/ H.S.C.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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