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신라

6.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오늘의 쉼터 2008. 10. 26. 19:50

 

6.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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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 생존기산 : (?~134)

   □ 재위기간 : (112~134)



 ◐ 본문설명

신라 6대 왕으로서 성은 박씨(朴氏)이고 파사왕(婆娑王;재위80-12년)의 장남이다.

지미왕(祗味王)이라고도 하는데, 원래의 칭호는 지마 이사금(尼師今)이었다.

어머니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 김씨(金氏)이고 비(妃)는 김마제(金摩帝)의 딸 애례부인(愛禮夫人)이다.

112년 10월 아버지 파사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113년 2월에 몸소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창영(昌永)을 이찬(;2등급)으로 삼아 정치에 참여시켰다.

옥권(玉權)을 파진찬(;4등급)으로 삼고 신권(申權)을 일길찬(;7등급)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급찬(;9등급)으로 삼았다.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와서 예방(禮訪)하였다.

114년 3월에 우박이 내려 보리의 싹을 상하게 하였다.

4월에 홍수가 났으며, 죄수의 정상을 살펴 사형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풀어주었다.

115년 2월에 가야가 남쪽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7월에 몸소 가야를 정벌하였는데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넜다.

 가야인이 군사를 수풀 속에 숨겨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왕이 깨닫지 못하고 똑바로 나아가니 복병이 일어나 몇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군사를 지휘하여 분발하여 싸워 포위를 뚫고 퇴각하였다.

116년 8월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침입케 하고 왕은 정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뒤따랐다.

 가야는 성에 들어앉아 굳게 지키고만 있었는데, 마침 오랫동안 비가 내렸으므로 되돌아 왔다.

120년 2월에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천둥치는 것과 같았다.

  3월에 서울에 질병이 크게 번졌다.

121년 정월에 익종(翌宗)을 이찬(;2등급)으로 삼고 흔련(昕連)을 파진찬(;4등급)으로 삼았으며, 임권(林權)을 아찬(阿飡;6등급)으로 삼았다.

 2월에 대증산성(大甑山城)을 쌓았다.

 4월에 왜인이 동쪽 변경에 침입하였다.

122년 4월에 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 나무가 부러지고 기와가 날아갔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그쳤다.

 서울 사람들이 "왜나라 군사가 크게 쳐들어온다."고 말을 잘못 퍼뜨리고는 다투어 산골짜기로 도망하여 숨었다.

 왕이 이찬(;2등급) 익종 등에게 명하여 타일러 말렸다.

 7월에 누리[蝗(황) ;메뚜기]가 날아와 곡식을 해쳤다.

 흉년이 들고 도둑이 많았다.

123년 3월에 왜국(倭國)과 화해하였다.

 4월에 서리가 내렸다.

 5월에 금성 동쪽의 민가(民家)가 함몰하여 못이 되었는데, 거기서 연꽃이 돋아났다.

124년 9월 그믐 경신에 일식이 있었다.

125년 정월에 말갈(靺鞨)이 북쪽 변경에 대거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였다.

 7월에 또 대령책(大嶺柵)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지났으므로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백제가 다섯 명의 장군을 보내 도우니 적병이 듣고서 물러갔다.

127년 7월 초하루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128년 8월에 장성(長星)이 하늘에 뻗쳤다.

 10월에 나라의 동쪽에 지진이 일어났다.

 11월에 천둥이 쳤다.

129년 가을에 이찬(;2등급) 창영(昌永)이 죽었으므로 파진찬(;4등급) 옥권(玉權)을 이찬으로 삼아 정치에 참여시켰다.

131년 5월에 큰 비가 내려 민가가 떠내려가고 물에 잠겼다.

132년 2월에 궁궐의 남쪽 문에 불이 났다.

134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8월 아들 없이 죽었다.

 

그에 따라 3대 유리왕(儒理王;재위24-57년)의 큰아들이자 지마이사금의 삼촌인 일성(逸聖)이 왕이 되었다.



※ 내용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내용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