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 생존기산 : (? ~ 112)
□ 재위기간 : (80 ~ 112)
◐ 본문설명
신라 5대 왕으로서 원래의 칭호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다.
성(姓)은 박씨(朴氏)로 유리왕(儒理王;재위24-57년)의 둘째 아들, 또는 유리왕의 아우인 내로(奈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김씨 사성부인(史省夫人)으로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이다.
80년 9월 제4대 탈해왕(脫解王;재위57-80년)이 죽자,
유리왕의 태자 일성(逸聖;뒤에 일성이사금)이 왕위를 계승하여야 했으나 현명하지 못하여 신하들이 파사왕을 옹립하였다.
파사는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로 씀씀이를 줄이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훌륭하게 여겼다.
81년 봄 2월에 몸소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군(州郡)을 두루 돌며 위무하고, 창고를 열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정상을 살펴 두 가지 사형죄[二罪]가 아닌 사람은 모두 풀어 주었다.
82년 정월에 영(令)을 내려 말하였다.
“지금 창고는 텅 비었고 병기는 무디어져 있다.
만약 수재(水災)나 한재(旱災)가 있거나 변방에 변고가 있으면 무엇으로써 그것을 막겠는가?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게 하고 병기를 벼리어서 뜻밖의 일에 대비하라!”
84년 2월에 명선(明宣)을 이찬(;2등급)으로 삼고 윤량(允良)을 파진찬(;4등급)으로 삼았다.
5월에 고타군주(古抒郡主)가 푸른 소[靑牛]를 바쳤다. 남신현(南新縣)에서 보리줄기가 가지를 쳤다.
크게 풍년이 들어 여행하는 사람이 양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85년 정월에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2월에 길원(吉元)을 아찬(阿飡;6등급)으로 삼았다.
4월에 객성(客星;육안이나 망원경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던 별이 갑자기 밝아져 수일 내에 광도가 수천 배에서 수만 배에
이르는 별)이 자미(紫微) [별자리]에 들어갔다.
87년 7월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의 축조하였다.
90년 7월에 사자(使者) 10명을 나누어 파견하여 주주(州主)와 군주(郡主)를 감찰하여,
공무에 힘쓰지 않거나 밭과 들을 크게 황폐하게 한 자의 관직을 강등시키거나 파면하였다.
93년 정월에 윤량(允良)을 이찬(;2등급)으로 삼고 계기(啓其)를 파진찬(;4등급)으로 삼았다.
2월에 고소부리군(古所夫里郡)에 순행하여 나이 많은 사람을 몸소 위문하고 곡식을 내려 주었다.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94년에 가야가 마두성(馬頭城)을 포위했을 때 아찬(阿飡;6등급) 길원(吉元)을 보내어 기병 1,000명을 거느리고 가서 쫓게 했다.
8월에 알천(閼川)에서 군사를 사열하였다.
96년 7월에 폭풍이 남쪽에서 불어 금성 남쪽의 큰 나무가 뽑혔다.
9월에 가야가 다시 남쪽 변경을 침범하여 가소성주(加召城主) 장세(長世)가 이를 막다가 전사하자 왕이 직접 군사 5,000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크게 이겼다.
97년 정월에 군사를 일으켜 가야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그 나라 임금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98년 4월에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100년 7월에 우박이 내려 날아다니던 새가 [맞아서] 죽었다.
10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사람이 있었다.
101년 2월 금성(金城)의 남동쪽에 월성(月城)을 새로이 쌓고, 7월 그곳으로 이거(移居)하였다.
102년에는 8월 음집벌국(音汁伐國) ·실직국(悉直國) ·압독국(押督國) 등 세 나라를 합병하여 국세를 넓혔다.
10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다.
104년 정월에 뭇 별들의 운석이 비오듯이 떨어졌으나 땅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7월에 실직(悉直)이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군사를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고, 그 남은 무리들을 남쪽의 변방으로 옮겼다.
105년 정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해를 청하였다. 2월에 서울에 눈이 세 자나 왔다.
106년 정월에 압독에 거둥하여 빈궁한 사람들을 진휼하고, 3월에 압독에서 돌아왔다.
8월에 마두성주(馬頭城主)에게 명하여 가야를 치게 하였다.
108년 가야를 공격,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 등을 합병하는 등 현군으로서 추앙을 받았다.
능은 사릉(蛇陵:경주 5릉)이다.
109년 7월에 누리[蝗(황) ;메뚜기]가 곡식을 해쳤다.
왕이 산천에 두루 제사지내어 재해를 물리쳐주기를 빌었더니, 누리가 없어져 풍년이 들었다.
111년 4월에 성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112년 10월에 왕이 죽어 사릉(蛇陵) 안에 장사지냈다.
그 뒤를 이어 맏아들이 지마이사금이 되었다.
※ 내용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 내용출처 : 차석찬의 역사창고
※ 이미지출처 : http://blog.empas.com/iratto1004/643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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