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고조선

◐ 단군세기[檀君世紀](행촌 이암 지음)

오늘의 쉼터 2008. 9. 22. 16:22

 

 단군세기[檀君世紀](행촌 이암 지음) 

  

단군세기 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에,선비의 기세보다 먼저인 것이 없고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까닭인고. 역사가 밝혀지지 않으면 선비의 기세가 펼쳐 질 수 없고,선비의 기세가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고 다스림이 법도에 맞지 않는다.

무릇 올바른 역사 학은 나뿐 것은 나쁘다 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하며,사람을 저울질하고 세상을 이야기 하니,

이 모든 것이 세상에 표준이 되는 것이다.

이 백성이 생긴지도 오래되어 세상이 열린 이래의 여러 가지 질서도 많이 변화하였다.

나라와 역사는 나란히 이어지며 사람과 다스림도 따로 나누워 말할수 없는 것이니.

모두가 한 개인 보다 먼저 생각해야 되고 또 소중하게 생각해야 됨이라.

아아! 다스린다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사람은 오로지 바른길을 생각해야 되나니,

사람의 뜻에 따른다는 것이 어찌 바른 길를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겠는가?

나라에는  모습이 있고 역사에는 얼이 깃들여 있을진데 ,모습이 어찌 얼을 잃고도 모습만으로 우쭐댈 수

있다고 할까?

바른길로 바로 다스리는 것도 내 스스로 할 일이요 ,

모습과 얼을 함께 갖추는 것도 내 스스로 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일은 먼저 나 자신을 아는데 있음이라.그런데 스스로를 알려고 하면 어떤 것부터

알아야 할까?

무릇 (삼신이 하나)라는 이치는 *대원일大圓一에  그 뜻 이 있으니 조화의 신은 내려와 나의 성품을 이루고,

가르침의 신은 내려와 나의 삶을 이루고, 다스림의 신은 내려와 나의 정신을 이룬다.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만물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인저.

*대원일;거발의 뜻.

*성품.삶.정신;원문은 性.命.精으로 되어 있는바,성품,삶,정신으로 각각 해석함.

무릇 사람의 성품이라는 것은 신의 뿌리다.

그렇지만 신이 성품에 그 뿌리를 둔다고 해서 성품이 바로 신 그대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가 밝게 빛나며 어둡고 더럽지 않을 때에 비로소 참 성품이라 한다.

이로서 신은 기를 떠날수 없는 것이며,기도 또한 신을 떠날수 없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갖추고 있는 신의 성품과 기가 잘 조화되어 합쳐진 후에 스스로의 성품이나 삶을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성품은 삶을 떠나서 있을수 없고 삶도 성품을 떠나 있을수 없는 것이니,

스스로의 성품과 삶이 잘 어울린뒤에야,

이 몸이 신의 성품에 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기운넘치는 삶에서 비롯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품을 깨닫게 됨은 천신과 그 뿌리를 같이 함이고,

그 삶이 세상에 나는 것은 자연과 그 기운을 같이 함이며,

그 정신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모든 목숨있는 것들과 그 업을 같이 하는 것이다.하나를 알아 셋을 품고,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 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따라서 굳은 마음이 바뀌지 않을 때 (참 나)라고 하며, 신통하여 무었으로든 바뀔수 있을 때 신이라고 하나니

참된나는 신이 머무르는 바른 곳이다.

이 참된 근원을 알고 올바르게 수련한다면 좋은 징조는 스스로 몰려오고 밝은 빛이 항상 비추리라.

바로 하늘과 사람이 잘 어울릴 때 이로부터 세 가지 신의 성품을 배워 계율로서 맹세한다면 비로소

하나라는 것에 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과 정신이 잘 어울려서 빈틈이 없으면 세 가지 신이 하나인 상제(上帝)와 같아서 우주 만물과도

잘어울리고,마음과 기와 몸도 있는 듯 없는듯 자취도 없이 오랬동안 존재하게 된다.

감(感).식(息).촉(觸)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면 그것이 바로 한님 그데로인 셈이니

이 세상 어디에나 두루 그 덕을 베풀어서 함께 줄거우며,하늘,땅,사람과 더불어 끝없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까닦에 가르침을 세우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자기 스스로를 바르게 하고,

그 모습을 뒤집어 바꾸려  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모습없는 것에서부터 바꾸어 나가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나가는 단 하나의 길인저!

오호라 슬프다!

부여(夫餘)는 부여 스스로의 길을 잃었으니

그 뒤에는 한족(漢族)이 부여에 쳐들어와서 점령해 버렸고,고려(高麗)는 고려대로 길을 잃었으니

그 뒤에는 몽고蒙古가 고려에 쳐들어와서 차지해 버렸다.

만약 그때에 이보다 먼저 부여에 부여다움이 고스란히 있었다면 한인(漢人)은 자기 나라로 돌아 갔을 것이고,

고려에 고려다움이 있었다면 몽고사람들은 몽고로 돌아갔을 것이다.

앙,슬프도다!

얼마전에는

*잠(潛)이나 청(淸)과 같은 무리들의 못된 의견들이 몰래 수많은 귀신들처럼 어두운 세상을 덮었다.

*남생男生이나

*발기(發岐) 따위들과 같은 반역하는 마음으로 서로 만나 합쳐진 것이다.

바른길도 사람다운 생각도 다 없어져,나라 꼴도 나라 정신도 다 사라져 버린후에 나라를 위한다는

이들인들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만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잠이나 청;오잠과 유청신(?~1326).두사람다 고려중기의 역적이다.

먼저 오잠은 고려충열왕(1236~1308)때의 간신.승지로 있을 때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연락(宴樂)을

좋아하므로 김원상.석천보등과 함께 총애를 미끼로 성색(聲色)으로 임금을 기쁘게 하려고 삼장사(三藏寺),

사룡(蛇龍)등의 노래를 지어 가무를 관람 시키는등 재주를 부렸다.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가 되어 항상 임금의 부자를 모함으로 이간 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해하여

원성이높았다.

원충갑등 50여 명이 원나라에서 파견된 다루가치(達魯花赤) 첩목아불화(帖木兒不花)에게 호소하니

윤만비.홍자번 등도 들고일어나서 오잠의 처벌을 요청하였으나 그도 아무일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

참다 못한 김심.오감량.홍자번등은 군대를 이끌고가서 대궐을 포위하고 오잠을 내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임금은 듣지 않앗다.

이에 오감량은 임금의 거처에 들어가 오잠을 끌어내다

최숙천으로 하여금 원나라로 압송하니 원나라 황제는 그를 안서로 귀양보냈다.

훗날 충선왕(1275~1314)때에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구성군龜城君)에ㅡ봉해져서

여전히 간신노릇을 하여 해독이 많았다.

유청신은  어려서 몽고어를 공부하여 후에 여러번 원나라에 내왕하는 동안 외교에 능했으므로

충렬왕의 총애를 받아 대장군을 거쳐 동지밀직감찰이 되고 충선왕때 강정부사.

충렬왕복위 후 첨의정승이 되고 고흥 부원군 에 피봉,왕의 옥대를 하사 받았다.

충숙왕 즉위 후 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갔을 때 심왕 고로 하여금 고려의 왕위에 올리려는 매국적 반역의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여 귀국하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죽었다.

*남생;고구려 보장왕 대 연개소문의 맏아들로 당나라에 망명하여 고구려 정벌의 향도가 됨으로서

 고구려 멸망의 결정적 반역 행위를 한 고구려의 반역자.

*발기;고구려 8대 신대왕 백고의 아들,9대고국천왕의 동생.10대산상왕 연우의 형에 해당한다.

 형 고국천왕이 후사없이 죽자 동생 연우가 우왕후와 짜고 왕위를 계승하자 반란을 일으키나

 막내동생 계수에게 평정되어 자살함.계수는 북부여왕 위구대와 동일인이며 백제왕 구수이다.

 또 가지마는 그를 일본의 진무덴노오의 모델이라 비정했다.

 따라서 발기는 이쯔세노미고도의 모델이라고 상상했다.

 여기서 남생과 함께 쓰여진 것은 발기 때문에 고구려가 분열했기 때문이다.

 분열뒤에 계수가 부여국으로 되돌아와 뒤에 이도국을 세우고 그것이 백제국이 된다.

 위지는 장자 발기와 소자 이이모만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간섭하는 정치는 갈수록 심해져서, 임금님을 바꾸고 다시 앉히기도 하며

* 대신을 마음데로 임명하기도 하는 등,멋대로 설쳐대고 있어도,나와 같은 나라의 기둥되는 신하라는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앉아있을 뿐,그 대책이 없음은 무슨까닦인가?

이는바로 나라에 역사가 없으니 모습은 있어도 그 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 벼슬아치의 힘으로 조금도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바로 나라안의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다 스스로 나라를 구할 것을 다짐하고 그 할바를 찾을때에

나라를 구하는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그런 후에야 비로소 나라를 구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 한 것이다.

그러면 나라를 구함은 어디에 그 중요함이 있을까?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나라에는 역사가 있어야만 되고 그 모습을 가지려면 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신시(神市)에 하늘을여니 이로부터 나라의계통이 이어지게 되었고,나라의계통이 이어짐에 나라가

바로 서게 되었으며,백성도 다스리는 계통이 있음으로써 모여들게 되었으니 역사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느가?

이런까닦에 기쁘게 단군님의 역사를 쓰기 시작 했다.

해경대왕12년(1363)계묘*10월3일 홍행촌(洪行村)의 늙은이가 강도(江都)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다.

*다시 앉히기도; 중조(重祚)라고 하였으니 한번 왕위를 떠난 임금이 다시 즉위하는 것.

*효경대왕12년 계묘; 원문에서 上之12年 癸卯 라고 했으니 .고려31대 공민왕 12년을 뜻함

*강도;강화도를 말함

 

 



단 군 세 기

 

 

초대단군 왕검 재위93년

 

고기에서 말한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熊씨의 왕녀이며

신묘(b.c.2370)년 5월2일 인시에 밝달나무(檀木)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했다.

14세 되던 갑진(b.c.2357)년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함을 듣고 그로써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 하도록 하였다.

 

무진년(b.c.2333) 제요도당(帝堯陶唐)때에 단국(檀局)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檀木)의 터에 이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되엇다.

이를 단군 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帝位)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 까지 사셨다.

*신인;단군이 우리의 민족사 특히 정통적 민족종교의 교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바로 단군이

 삼신.즉 천신,지신,인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신(人神)의 위치에 도달하여 "육체의 영화(靈化)"를 이룩한

 부장을 뜻한다.

*비왕; 비장(裨將) 소관(小官) 대장을 돕는 장관(將官) 부장(副將)을 뜻한다.

무진 원년(bc.2333) 바야흐러 신시의 다스림이 시작 되었을 때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들이 산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살며 풀잎으로 옷을 해입고 맨발로 다녔다.

개천 1565년 상월(上月) 3일에 이르러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잡았다.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님께 제사를 올렸는데 지극한 신의덕과 성인의 어진 마음을 함께 갖추었더라.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어 그 다스림이 높고 크고 또 맹렬하였으니 구한의 백성들이

모두 마음 으로 따르며 천제의 화신이라 하고 그를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이름했다.

*조선;흔히 아침(조朝) 빛날(선鮮)에 견주어 아침해가 빛난다는 뜻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 하나 ,

조선이라는 국호는 한자가 생기기전에 이미 있었던 국호이니 조선이란 말은 우리의 고대어로

무었을 뜻하였을까?

앞에서 언급 했듯이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조선의 어원은 숙신(肅愼)이라 하고 "만주원류고"에서는

숙신의 옛이름은 주신(珠申)이라 하고 주신은 소속 관경(管境)을 가리키는 만주 말이라 했다.

바로 여기에 조선의 원의(源義)가 있는 듯하며 숙신은 곧 조선의 고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신이 조선이 되는 것은 한 음의 차이이니 그다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뭏튼 우리의 역사상 조선은  가장 오래된 국호임을 새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결코 아침은 빛난다 등 한자와는 무관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하는 morning calming korea 따위의 영문 철자도 재고할 일이다.

단군왕검은 가르침을 내려 말했다.

하늘의 법칙은 하나일 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니니라.

너희 들은 오로지 순수하게 참마음을 다 할 것이니 이로써 너희 마음이 곧 한님을 보게 되리라.

하늘의 뜻은 언제 어디서니 하나이고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한가지라.

이런 까닦에 스스로를  살펴보아 자기의 마음을 알면 이로써 다른사람의 마음도 살 필수 있으리라.

다른이의 마음을 교화하여 하늘 뜻에 잘 맞출수 있다면 이로써 세상어느곳에도 잘 쓰일수 있는 것이리라.

너희가 태어남은 오로지 부모에 연유하였고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다만 너희 부모를 옳게

받들어 모시는 것이 바로 하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고, 또 나라에 까지도 그 힘이 미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충성되고 효도 함이니라.

너희가 이 도를 잘 따라 몸에 지닌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먼저 화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짐승에게도 짝이 있고 다 해진 신발도 짝이 있나니 ,

너희 사내와 계집은 서로 화목하여 원망함 없고 질투함도 없고 음란함도 삼갈 것이다.

너희들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면 크건 작건 가림없이 모두 아프지 않던가?

서로 사랑할지언정 서로 헐뜯지 말고 서로 도울지언정 서로 다투는 일이 없다면 집안도 나라도 다 크게

일어나리라.

너희들,소나 말을 살펴보아도 다만 서로 먹이를 나누워 먹지 않더냐?

너희가 서로 양보하여 서로 어쩌지 않고 함께 일하여 서로 빼앗지 않는다면 나라가 다 융성하리라.

너희들 ,호랑이 무리를 보아라.힘만 세고 난폭하여* 신령스럽지 못하더니 비천하게 되어 버렸도다.

너희가 사람다운 성품을 잃고 난폭하게 날뛰지 않는 다면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니라.

항상 하늘의 뜻을 받들어 모든 것을 사랑 할지니라.

너희는 위태로운 것을 만나면 도울지언정 모욕을 주지 말지니라.

너희 만일 이런 뜻을 어긴다면 영원히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수 없어 네 한 몸은 물론 집안까지도 다 사라지리라.

*힘만 세고 난폭하여; 원어로는 걸오(桀驁)라 하였는데,

길들이지 않은 말을 뜻함.횡포하여 복종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너희 만일 논에 불을 일으켜 벼들이 다 타 버리게 된다면 하늘이 이를 벌 할 것이니라.

너희가 아무리 두덮게 싸서 감춘다 해도 그 냄새는 반드시 새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니라.

너희는 항상 바른 성품을 공경스럽게 지녀서 사악한 마음을 품지 말 것이며,나뿐것을 감추지 말 것이며,

재앙을 감추지 말 것이다.

마음을 다스려 하늘을 공경하고 모든 백성을 가까이하라.

너희는 이로서 끝없는 행복을 누릴 것이나니,너희 오가의 무리 들이여 이 뜻을 잘 따를 지어다.

이때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엿고,성조(成造)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나을(那乙)에게는 호적을 관리 하도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케 하엿다.

비서갑 (비西岬)의 하백녀(河伯女)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애 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淳厖)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정사 50년(b.c2284) 홍수가 크게 나서 백성들이 쉴수가 없었다.

제(帝)께서 는 풍백(風伯)인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고 높은 산과 큰강을 평정 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였으니 우수주(牛首州)에 그 비석이 있다.

*牛首州 ; 중수성(中首省) 삭주(朔州):(평안북도)라고도 하며,김사렵의 삼국유사는 춘천(春川)을

우수주라 했고 옛날의 맥국(貊國)이라 했으나 반도사관에 입각한 망설이다.

단군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라고 전제한 종래의 사관이 빚은 오류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 지명에 우수 곧 "소머리","쇠 머리"라는 말이 있음을 주목해야 하며

그 곳을 함부로 비정(比定)함은 큰 잘못이다.

다만 소 머리. 쇠 머리가 주목이 되는 것은 슈메를 ,소말(蘇末),수밀이국(須密爾國) 등의

역사 지명과 모두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다. 

여기 우수주도 당연히 저 대륙의 어떤 지명이지 결코 한반도 안의 지명이 아님을 단언 해 둔다. 

앞서 말한 일본인 가지마는 우수주를 바빌론의 우르지방이라고 망언 하고 있다.

가지마의 설을 따르다 보면 한국사(韓國史)가 곧 바빌로니아 역사의 후기사(後期史)가 되고 만다.

무오 51년(b.c2283)임금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祭天)의 단(檀)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바로 그것이다.  

갑술 67년(b.c2267) 단군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사공우(司共)과 만나게  하엿다.

태자는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방법을 전 하여 주었고 나라의 경계도 따져서 정했으니 ,

유주(幽州)와 영주(營州)의 두 곳 땅이 우리에게 속 하였다.

또 회대(淮垈)지방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고 이를 다스렸는데 우순(虞舜)에게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穴口; 지금의 강화도

 

*三郞城 ;경기도 강화군 길삼면에 있는 고성의 이름이 삼랑성이다.

  일면 정족산성(鼎足山城) . 단군이 세 아들에게 명하여 쌓은 성이라 한다.

  참성단과 함께 단군 유적의 하나이다.

 

*摩璃山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이다.

마니산이나 마리산의 본 이름은 (ㅁ 밑에. 자)리 산이다. (ㅁ 밑에. 자)리  즉 머리(수首)를 뜻 한다 .

훗 날 마니산으로 개명하였으니 잘못이다.

 

*塹城壇 ;강화도에 제천단(祭天壇)이 있다.

*塗山 ; 중국 안휘성(懷遠縣)을  흐르는 淮河의 동쪽 강변, 일명 당도산(當塗山).

 일설엔 하나라 우왕이 도산씨(塗山氏)의 여인에게 장가든 장소라고 "오월춘추"는 적고 있다.

 사실은 단군의 태자 부루가 하나라 우왕과 만나 물을 다스리고 산을 다스리는법과 오행치수의 이론을

 전수시켰다는  이른바 도산의 회맹(會盟)으로 널리 알려진 땅이다.

 이 땅에 대해서는 중국쪽의 정사에도 하나라 우왕과의 관련사실을 대서 특필하고 있으니

 그때 우리 쪽의 문화가 이 회담을 통해 중국쪽에 넘어간 것 같다.

 

*우사공; 사공은 관명 ,소호김천씨(小昊金泉氏) 대 둔 벼슬 이름인데 요(堯)임금의 당(唐)나라 때와 멀리

주(周)나라 때도 그대로 �다.

주 때는 육경(六卿)의 하나로 동관(冬官) 대사공(大司空)이라 하고 대사마(大司馬):(군정담당)

대사도(大司徒):(예법관장)와 함께 삼공(三公)에 속하다가 뒤에 대자는 떨어지거 사공으로 역대에 쓰였다.

도산회의에 나온 하나라 사공의 성씨가 우가 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기록대로 우사공을 믿기로 하자.

*幽州와 營州 ; 幽營이란 유주와 영주를 뜻하는데, 유주는  요임금의 12주의 하나.

이외에도 같은 이름으로 여려곳이 있다.

순(舜)임금때 기주(冀州) 동북의 땅을 갈라 유주라 하니 동북 유매의 땅이란 뜻이다.

하북성의 순천(順川) 영평(永平) 및 만주 요녕성의 금주(錦州) 서북 일대의땅.

전연(前燕)이 설치한 것으로 치소(治所)는 용성(龍城) 산서성 이석현치(離石縣治). 남연(南燕)이 설치한

것으로 치소는 이석(離石) .동성 당읍현(堂邑縣)의 서남.전조(前趙)의 유연(劉淵)이 설치한 것으로

치소는 이석(離石). 영주는 옛 요임금 12주의 하나.순임금은 청주(靑州) 동북 의 땅을 갈라 영주라 하였다.

지금의 하북성으로부터 요녕성 및 한반도에 미치는 땅이라고 종래엔 설명 하였으나 이는 큰 잘못이다,  

여기 조선은 하북성의 해안에서 요녕성에 걸처서 있는 조선을 가리키는 조선이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은 현재의 한반도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착각하는데서 오는 잘못이다.  

옛날엔 한반도의 존재 사실 자체를 중국의 필자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외에도 후조(後趙)가 둔 것으로 하북성 천안현(遷安縣)의 서쪽 , 후위後魏가  둔 것으로

만주 열하성(熱河省) 조양현(朝陽縣)의 치소, 양(梁)나라가 둔 것으로 호남성 도현(道縣) ,

요(遼)가 둔 것으로 하북성 창려현(昌黎縣) 등이다.

*분조를 두고; 분조를 둔다함은 명당(明堂)을 두어 일종의 세습 통치를 인정함을 뜻한다. 

*우순(虞舜) ;제순유우(帝舜有虞)를 말한다.

  이른바 중국사의오제(五帝)의 하나이다.

그가 동이족이라고 "맹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離婁章句 下"" 순임금은 제풍에서 태어나고 부하로 이사 하시고 명조에서 죽의시니

제풍.부하.명조는 동이족의 땅이니 그는 동이 사람이다.

"舜生於諸風 移於負荷 卒於鳴條 諸風負荷鳴條 東夷之地 舜東夷之人也"

단군의 제후라는 이 기사는 따라서 그다지 놀라운 기사도 아니다.

경자 93년 (b.c.2241) 단군께서 버들 궁궐에 계셨는데 흙 계단이 절로 생겼고 풀숲은 없어지지 않으니

단목(檀木)이 무성한 그늘에서 곰.호랑이 와 더불어 노닐며 소와 양이 크는 것을 보셨다 .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고 누애를 치도록 권장 하며  고기 잡기를 가르치니 백성들은 남은 물건을

나라 살림에 보태었다.

나라 안에는 큰 모임이 있었으니

시월 상달이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백성들 모두 기쁨에 넘쳐서 환호하며 스스로 즐겼다.  

이로부터 단군님의 교화는 온누리를 가득 덮어서 멀리 탐랑(眈浪)에까지 미쳤으며

가르침은 점차로 멀리 퍼져 나갔다.  

이에 천하의 땅을 새로 갈아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오가(五加) 64족을 포함하였다.

이 해 3월15일 단군께선 봉정(蓬亭)에서 붕어하시니 교외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

  

이에 백성들은 마치 부모님 돌아가신 듯 단군님의 기를 받들어 모시고 아침 저녁 으로 함께 앉아 경배하며

생각하여 마음 속에서 잊지 못하더라.

이에 태자 부루가 새로 단군이 되었다.

 

*탐랑; 탐라(眈羅)와 낙랑(樂浪)이라는 설도 있지만, 오히려 일본과 그 외의 어떤 변방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

 물론 위에서의 낙랑도 북경지방을 가리키는 것이다.

 

*단군님의 기;단기檀旗라고 했으니 "기"는 깃발이며 조기弔旗를 뜻한다.

 

 

 

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

 

 신축 원년(b.c2240) 단제 께서는 어질면서 다복하셔서 재물을 저장하니 크게 풍부하였으며,

 백성과 더불어 함께 산업을 다스리시니

 한 사람도 배고품 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 없었다.

 봄 가을로 나라 안을 두루 살펴 보시고는 하늘에 제를 올려 예를 다하였다.

 여려 왕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랑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짓고 뽕나무 심는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기숙사를 설치하여; 원문에서의 요(寮)를 기숙사로 풀었다. 

 제순유우(帝舜有虞)가 유주영주의 두 주를 남국(藍國)의 이웃에 두었기 때문에 단제께서 병사를 보내어

 이를 정벌하여 그 왕을  모두 다 쫓아내시고, 동무(東武)와 도라(道羅)등을  그 곳의 제후로 봉하여

 그 공을 표창하였다.

 

 *제순유우;중국 삼황오제의 한 사람, 앞의 제순은 황제의 이름,뒤의 유우는 나라이름,유는 우의 발음을

  유도 �기 위하여 쓰인 글자이며 나라 이름은 우국(虞國)이다.

  동작빈의 년표에 의하면 순은 b.c2233~2183년의 제왕이다

 

 *남국;흔히 연나라라고 하나 구이九夷 가운데 남이藍夷도 있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동이전에서의 남이 기사는 다음과 같다."하나라 걸왕이 포악한지라 뭇이夷들이 내침하매.

 은나라 탕왕(b.c1751~1738)이 혁명을 일으켜 이를 정벌했는데, 중정仲丁(b.c1568~1558)때에 이르러서는

 남이가 반란하였다"라는 기사가있다.

 그러므로 남국을 남이로 볼 수 있고 또 그래야 할 것으로 본다.

 참고로 연나라의 연대는 b.c?~222년이다. 

 신시 이래로 하늘에 제사 지낼 때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다 모여 함께 노래 부르고 큰 덕을 찬양하며

 서로 화목을 다졌다.

 어아가(於阿歌)를 부르며 조상에 대해 고마워하였으며 신인(神人)이 사방을 다 화합하는 식을 올리니

 이게 곧 참전(參佺)의  계(戒)가 되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아어아. 우리들 조상님네 크신 은혜 높은 공덕, 배달나라 우리들 누구라도 잊지 마세.

 어아어아, 착한 마음 큰 활이고 나뿐 마음 과녘이라,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니

 활 줄처럼 똑같으며, 착한 마음 곧은 화살 한 맘으로 똑같아라.   

 어아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 되어 과녁마다 뚫고지고, 끓는 마음 착한 마음 눈과 같은 악한마음.

 어아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라, 굳게 뭉친 같은 마음 배달나라 영광일세,  

 천년만년 크신 은덕 , 한배검이시여, 한배검 이시여.

 

 *어아가;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고대가사의 이름인 듯.

 

*참전의 계;고구려 제상 을파소(?203)가 지은 "참전계경"이 현존한다. 

*한배검;원문에서는 대조신大祖神이라 했다. 

 임인2년(b.c2239), 단제께서는 소련(少連) 대련(大連)을 불러 다스림의 길을 물으셨다.

 이보다 앞서 소련과 대련은 상(喪)을 잘 치루 었으니 , 

 사흘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고, 석 달 동안을 느슨하지 않았고, 한 해가 지났을 때까지 슬퍼 애통해 하였으며

 삼 년 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다.

 이 때부터 온통  풍속이 변하여 상을 치룸에 다만 다섯 달로 멈추던 것을 오래 될수록 영광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 어찌 천하의 큰 성인이라 하지 않을 것이며 덕으로 교화하면 백성이 이를 따름이 우편 말의 빠름과 같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대련과 소련은 이렇듯 효로서 알려  무릇 공자도 이를 칭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릇 부모에게 효도함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익 되게 하는 근본이니,

 온 세상에 두루 알려 표준으로 삼게 되었다. 

 *소련,대련;동양고전상에는 단순히 고대인의 이름으로만 적히고 "예기"에서는

 :少連大連善居喪 "이라고 있을 뿐이다.

 즉 소련.대련은 상을 잘 치뤘다고 하여 효자임을 말하였다.

 그러나 "三日不怠 三月懈朞年悲哀 三年憂東夷之子也

            삼일불태 삼월해기년비애 삼년우동이지자야"라고 주해를 달았으니 우리의 조상임에 틀림없다. 

 

소련,대련은 어쨋던 중국 고전이 말하는 하늘이 낸 효자,곧 천종지효(天從之孝)라고 효의 대표요

상징처럼 취급하는 인물이다.

효를 모든 행동의 근본이라 하는 유교교리에서 볼 때 소련.대련의 효는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계묘(b.c2238)9월, 조서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 까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 푸른 옷을 입게하였다, 

쌀되와 저울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엿고 ,베와 모시의 시장 가격이 서로 다른 곳이 없으며 백성들 서로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했다.경술10년(bc2231)4월 밭을 나누고 *밭문서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지 않도록 한였다.

  

임자12년(bc2229)신지(神誌)인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무술5년(bc2183) 단제께서 붕어하셨는데 이 날 일식(日蝕)이 있었다.

산 짐승도 무리를 지어 미친 듯 산위에서 소리를 질렸고 백성들은 심하게 통곡하였다. 

뒤에 백성들은 제단을 설치하였으니 

집안에 땅을 골라 단을 설치하고 흙 그릇에 쌀과 곡식을 가득 담아 단 위에 올려 놓았다.

이를 부루의 단지라고 부르고 업신(業身)으로 삼았으며, 또 완전한 사람이 받는 계명이라고 하여

전계(佺戒)라고도 불렀고, 업주가리(業主嘉利)라 하였으니 바로 사람과 업이 함께 완전하다는 뜻이다.

 태자 가륵(嘉勒)이 새로 즉위했다.

 

*푸른 옷;이 옷을 입게 한 이유는 무었일까?

  우리민족은 백의 민족이라 하엿 거늘 여기 선 오행사상에 입각하여

  동쪽을 목이라 하고 나무는 푸르다 하였으므로 옷을 푸른 색으로 입게 함인가. 

*쌀되와 저울;두斗.형衡이라 했으니 도량 형기를 말한다. 

*모두 통일 하도록 ; 準於官준어관이라 했으니 ,저울눈이나 자의 눈금을 관에서 통제함을 뜻함. 

*밭을 나누고;구정(邱井)이라 햇으니 옛날의 전리(田里)의 구획.구(區)는 16정(井)은 900무(畝).

  6척사방(六尺四方)을 보(步)라 하고 보백(步百)을 무라 하더니 진나라 이후 240보를 1무라 한다.

*칠회력;책력의 일종인 것으로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 신시본기에 참고 할 만한 자료가 있다.

*구정도;구정(邱井)을 구획한 도면

*전계;전佺을 (커발한)이라고 읽으니, 커발한 계명을 뜻한다

*업주가리;오늘날 민속으로도 울타리 안에 업주가리 라 하는 볏짚 무더기가 있어 제물을 바치며 치성을 드린다.

 

 

 

3세 단군가륵 재위45년

 


  기해 원년(BC 2182) 5월, 단제께서 삼랑 을보륵을 불러 신왕종전의 도를 물으셨다.

  을보륵은 엄지손가락을 교차시켜 바른손을 올려놓아 삼육대례를 행한 다음에 나아가서 말씀드렸다. 

  '신(神)은 능히 만물을 생겨나게 하여 각자 제 성품을 다하게 하심에 신의 깊은 뜻이 있어 백성들은

  모두 의지하고 빕니다.

  왕은 그 덕과 의로써 세상을 다스려 각각 그 삶을 편안하게 함에 왕의 바른 다스림이 있으니

  백성들 모두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다스림은 나라가 선택하는 것이며 완전함은 백성이 바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7일을 기한으로 삼신님께 나아가 세번을 빌어 온전하게 되기를 다짐하면 구한이 바로 다스리게됨니다

  대저 그길은 아비 되려 하는 자는 곧 아비답게 하고, 임금 노릇하고자 하는 이는 임금답게 하며 스승이 되고자

이리하여 3 , 7 일을 기한으로 모든 사람이 모여 계를 지켰다.  

이로부터 조정엔 종훈이 있고 백성들에게는 전계가 있었나니 우주의 정기는 순수하게 온 누리에 내리고,

삼광오정은 사람의 머리에 모여뭉쳐서 깊고 묘한것을 얻게 되니 저절로 서로 돕는 것이라.

이를 커발한이라 하며 구한에 두루 베풀어지니 구한의 백성들이 모두 복종하며 교화되어 하나 같이 되었다.

경자 2년 아직 풍속이 하나 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이 있다해도 열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키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라 하니  

그글은 다음과 같았다.


 

                                          

 

              

신축 3년 신지인 고글에게 명하여 <<배달유기 培達留記>>를 편수케 하였다. 

갑진 6년 열양의 욕살 색정에게 명하여 약수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갇혀 있도록 하였다. 

뒤에 이를 용서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병오 8년 강거가 반란을 일으켰다.

단제는 이를 지백특에서 정벌하였다.  

초여름 4월이 되자 단제께서는 불함산에 올라 민가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시고는 연기가 일어나는 것이

적은 집은 조세를 줄이도록 명령하시어 조세의 차이가 있게 하였다.

무신 10년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여수기에게 명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 땅을 일러서 소시모리라고 하다가 지금은 음이 바뀌어 우수국이 되다.

그 후손에 협야후라는 자가 있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삼도에 웅거하며 스스로 천왕이라 칭했다.

계미 45년 9월 단제 붕어하시니 태자 오사구가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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