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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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2대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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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김순영(父), 노 씨(母) |
종교 |
박은식(朴殷植, 1859년 음력 9월 30일 ~ 1925년 11월 1일)은 학자 · 언론인 · 독립운동가이자 2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호는 겸곡(謙谷)· 백암(白岩)· 태백광노(太白狂奴)· 무치생(無恥生)이다.
[생애 초기]
박은식은 1859년 음력 9월 30일 황해도 황주군 남면에서 아버지 박용호와 어머니 노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살 때까지 서당에서 공부를 한 뒤 1875년 황해도에서 널리 이름나 있던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 과 서로 사귀면서 여러 의견들을 자주 나누는 등의 교류를 하였다.
이 두 사람은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히 자질이 뛰어났다.
1885년, 그는 향시에 참가해서 특선으로 합격하였다.
이후 6년동안 박은식은 줄곧 숭인전 능참봉이란 벼슬을 맡아 생활하였다.
[조선 멸망 이전]
박은식은 40세가 가까워오던 무렵부터 여태까지 공부했던 주자학과 위정척사사상의 본질에 의심을 품고
신학문ㆍ신지식을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에 절감하여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8년경 9월 민족지사 장지연·남궁억·나수연(羅壽淵)·유근(柳瑾) 등과 함께 [대한황성신문]을 인수하여
새로이 황성신문으로 제목을 바꾸고 창간 보급하였으며, 박은식은 장지연과 같이 공동주필에 취임하였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자 그는 매일신보에도 주필이 되어 사설을 썼다.
1905년에는 "황성신문"이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으며
1906년 2월 황성신문이 복간되었으나 장지연이 사장으로 복직하지 못한데 대한 안타까움에 1910년 8월
폐간될 때까지 [황성신문]에서 주필로 있었다.
1907년 비밀결사회인 신민회가 결성되자 그는 그 곳에 가입하여 교육ㆍ출판 부문에서 민족계몽운동에 힘썼다.
[독립 운동]
박은식은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그 이듬해인 1911년 4월 중국으로 망명하여 만주 환인현 흥도천 윤세복의 집에서 1년간 머무르면서
[동명성왕실기].[몽배금태도].[명림답부전].[천개소문전].[대동고대사론] 등을 집필하였다.
이후 그는 중국 각지의 이름난 사람들과 교류를 하다 상해로 와서 1914년 망명 이후 줄곧 써오던 [한국통사]의 집필을 완성하여 이듬해 간행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과정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러면서도 일제에
대한 독립 운동도 중시하여 의병 활동은 정신 역사적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높이 평가하였다.
백암 박은식이 쓴 [한국통사]는 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교포 사이들에서 널리 읽혀졌고,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도 출판되어 우리 교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1919년 박은식은 3ㆍ1운동을 경험하고선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집필하여 책으로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우리 민족의 이러한 노력은 광복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 확신하였다.
1919년 10월 15일 그는 국민교육의 연구장려 및 유학생파견, 지도 등의 목적으로 하는 대한교육회(大韓敎育會)를 상해에서 조직하였으며, 회장 겸 편집부원으로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취임과 죽음]
1925년 3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계자들은 파벌 싸움으로 인해 대통령으로서 마땅한 사람이 없자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박은식은 7월 오히려 임시정부의 정치 체제를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무위원제로 바꾼 뒤, 국무위원제의
최고 대표자격인 국무령에 이상룡을 추천하여 당선시키고는 지병을 이유로 사임하고 얼마 안되어서.
1925년 11월 1일, 지병인 인후염으로 인하여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정에서는 그의 국가, 민족에 끼친 공훈을 추도하여 처음으로 국장을 거행, 상해 정안사로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광복후 정부에서는 조국광복과 교육 등에 두루 헌신한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저서]
저술
번역서
- 《발해사》
- 《금사》
[가족]
양자 : 박시창, 그도 독립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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