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음택지

김극형 묘소(1605-1663)···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오늘의 쉼터 2008. 6. 14. 17:07

 

김극형 묘소(1605-1663)···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庚坐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명당은 여인의 음부와 같은 형태라 말하고는 하였는데,

바로 이곳 묘소를 산 아래 멀리서 조망하면 여인의 옥문을 꼭 빼 닮았다
그러한 지세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 싸여 오목하고 아늑한 지형을 강조한 것으로,

藏風局의 窩形 또는 鉗形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窩中微突이라고 핵심 지점은 정상적인 맥을 받아 통통해야 함에도

혈의 구조를 잘못 이해함으로서 窩·鉗이라 불리는

거의 모든 묘소가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명당에 대한 표현이 와전되면서 풍수에 문외한인 사람도 즐겨 쓰는 수식어가 되었으나,

그로 인한 폐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확히 두개의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에 묘가 있다

따라서 묘소 앞에는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였으니 빗물과 바람의 통로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석물은 그슬린 듯 검고 추한 형상을 하고 있으니,

석물이 땅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
한편 모 풍수인은 이곳처럼 묘소 앞이 절벽으로 떨어진 형상을 전순이라 말한다는데.....
어떠한 경우든 묘를 쓰는 지점은 완만하고 자연스러워야 좋은 것이다 .
古云 : 氈脣者 穴下餘氣之發露也
(전순이란 혈을 맺고 남은 기운이 나타난 것이다)

또 혹자는 묘소 직전의 과협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 과협처는 偏龍으로 추한 형상을 하고 있으니 전형적으로 풍해를 입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협의 중요성은 알고 있으나, 정작 과협의 길흉 판단에는 매우 미숙하기 짝이 없다

古云 : 峽者龍之眞情發現處也 (과협은 용의 참된 기운이 나타난 곳이다)



패철을 신주단지처럼 다루는 사람들도 입만 열면 형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體用을 겸비한 최선인 양 말하지만, 차라리 말을 않느니만 못하고 말았다
거듭 말하지만 이곳은 형세론으로 吉한 것이 단 한 곳도 없다
패철의 허무함을 강변하기 위해 형세론의 본질까지 왜곡시키고 있으니,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이율 배반과 우유부단으로 계속해서 자충수를 두고 있음이다 .


김극형에게는 징 담 곤 순 견 5아들이 있으나 오직 징의 후손에서만 특별한 발복이 이어지고 있으며,

다른 형제들의 후손은 급전직하 한미 해지고 있으니 이곳 묘는 명당과는 한참 거리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4], 김 징 묘소(1623-1676)···의왕시 왕곡동,
癸坐
묘소의 초입은 산이 Y자 형태로 넓게 벌어져 있다
바람을 불러들이는 깔때기 같은 깊은 골짜기이니, 과연 저러한 지세에 묘 터가 있을까

의심되는 곳이다. 안내하는 사람이 없으면 매우 찾기가 어려운 곳이다



묘소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야무지게 형성된 결정체를 볼 수 있는데,

김성우 장군,이석형, 김 반 등의 묘와 공통적인 형상이다

古云 : 穴者山之花也 如樹之實也
         (혈은 산의 꽃이니, 나무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묘소 뒤는 20m 내외의 횡룡으로 이어지면서 미미한 泡와 가지를 형성하고 유연한 꼬리를 만들고 있으니,

전순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은 이곳을 보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능선이 묘소 가까이서 크게 휘감아 백호를 작하였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그것이 窩에 필요하다는 弦稜砂이니, 김 징 묘소는 본인이 그토록 오랜 세월 찾아 헤매던 와혈인 것이다.
나는 비로소 와혈을 처음 본 것인데, 유독 김 징의 후손에서만 정승 판서가 집중되는 연유가 이곳 묘소에서

기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존에 잘못 알려진 와혈들은 대개가 깊은 웅덩이에 잠겨 있었으나,

이곳은 폭 둘러싸인 중에서도 窩中微乳하여 결정체를 이루었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위의 묘는 와혈의 교과서라 하여 풍수인들이 필수 답사지로 여기는 오 빈 묘소인데,

단순히 좌우 능선이 감아준 형상만을 취했을 뿐 정작 맥도 없고 결정체도 없는 깊은 구렁텅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땅에서 조차 패철을 들이대고 엘로드를 들고 다니며 혈은 되었으나

재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풍수라 하겠는가?
오빈과 김징 묘소의 차이점을 숙지한다면 와혈에 대한 실수와 실패는 더 이상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맺음말
청풍김씨는 세간에 알려지기를 안동권씨 할머니 묘가 窩穴의 천하명당이라 하였으나,

지난회에 살펴본 바와 같이 窩穴이라 부를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야말로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는 격이다
오히려 산속 깊이 감춰져 있던 김 징의 묘가 와혈의 구성에 합당하였는데,

그에 상응하듯 김 징의 후손에서는 특별한 발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석형, 김 반의 묘소와 거의 흡사한 경우로서 그야말로 명당 쓰고 인물난 결과라 하겠다.
땅의 소응이 이와 같은데 뉘라서 풍수가 없다 하겠는가?








찾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