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自欺欺人의 땅, 韓 確 묘소
88향법에서 혈의 표본으로 여기는 韓確선생의 묘를 답사해 보자
壬坐 丙向, 左旋水, 丁破口
自旺向으로서 88향법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모란반개형의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이다
이곳 역시 풍수인들에게 순례코스와 같은 곳인데, 몇 가지 지적해 보겠다.
첫째,
주산에서부터 묘소가 있는 곳까지 약 100미터정도의 용세가 상하좌우의 변화가 전혀 없이 급하게
흘러 내리고 있다. 그저 미끄럼타기 좋은 경사의 산비탈 일 뿐이다
古云 : 峻急本無受容不融結
(경사가 급한 곳은 본시 수용이 없으니 혈을 맺지 못한다)
둘째,
묘소가 위치한 지점은 경사처 끝으로 최소한의 완만함이나 당판의 흔적이 없다
그저 흙을 쌓아 제절을 넓게 확장하였을 뿐이다
셋째,
주산과 백호사이의 어깨가 깊숙하게 끊어져 있어 藏風은커녕, 殺風이 염려되고 있다.
나는 이곳의 묘 터를 혹평하고자 함이 아니다
양지바르고 편안한 국세의 이 땅은 능히 체백을 온전하게 맡길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곳이 완벽한 명당이고, 혈의 표준이란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최소한 묘를 쓰고자 하는 곳이 경사가 완만하고 평평해야 “地貴平夷, 穴取安止”가 될 것이며,
그런 연후에 비로소 향을 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古云 : 凡山形土脈所落處, 必須在平夷之地
(무릇 산형과 토맥이 내려와 자리를 만드는 곳은, 반드시 평탄한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묘에서 파구까지의 거리는 약 200미터 된다.
이때 15도 (丁)의 각도 폭은 약 52m가 되므로, 현재의 묘소에서 전후좌우로 몇 십 미터를 이동하여도
패철상의 파구는 丁破口로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그곳의 긴 경사면 중 글자가 맞는 범위 내에서 위·아래 묘를 써도 모두가 혈이 된다는 것인가?
혹시나 본인이 모르는 무슨 특별한 법이 따로 있나 해서 이곳을 평가한 여러 글을 검토해 보았지만,
모두가 같은 주장으로 일관되게 명당이라 설명하고 있다
혈이 그처럼 용세도 없고 당판도 없는 산기슭에 글자와 공식에 의해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이름난 패철론자들이 말로는 형세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부득부득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와 같이
용혈을 무시한 채 얼토 당토 않기에 비판하는 것이다
·····
누구든 실수 할 수 있고 틀릴 수 있으며, 또 부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진지한 성찰 없이 자신이 최선인 양 무조건 믿고 따르라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국 교수협의회는 2007년의 세태를 自欺欺人이라는 단어를 선정하였다 한다.
자신도 속고 남까지 속인다는 뜻이니 한 확의 묘에서는 풍수계의 고질적인 自欺欺人적 병폐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풍수가 어려운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나 같은 둔재는 길흉화복의 추리는 감히 엄두도 못 내고 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도
평생 가능 할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전국을 다니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좋은 땅이란 상식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곳에서의 평가는 이전에 여러 풍수名師들이 설명한 것에 연연하다 보니,
자신의 소신과 제대로 배운 이론조차 흐지부지 묻혀 버리고 만다.
한편으로는 배움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며 자위하려 하지만 마음 한구석 어색한 의문점을 지울 수가
없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다 보니 더욱더 산을 공부하는데 자신이 없어지며, 결국에는 스스로가 앞장서서
풍수를 부정하고 멸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과 거의 흡사한 형태가 부산 동래정씨의 始祖 정문도 墓이다
흔히 이곳을 말하기를 也字형국이며 蓮花倒水形의 大明堂이라 말한다
그러나 묘소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넓게 퍼져있으며, 매우 길게 끌고 내려오면서도 또 역시 아무런
변화를 찾을 수가 없다
한확의 묘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 없이 흘러내리는 산비탈일 뿐이다
경사진 산을 깎아서 묘를 쓰고 축대를 쌓았으니, 그 무엇 하나 명당이라 부를만한 근거가 없다
古云:正穴者 當丘壟則坦然平易, 當平易則略起峯堆
(정혈이란 언덕지고 경사진 곳에서는 평탄한 곳에 있고,
평탄한 곳에서는 기봉하여 덩어리를 이룬 곳에 있다)
이곳의 평가는 길게 설명하거나 고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곳이다.
후손들 입장에서는 가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 始祖 묘를 숭상하는 것이야 갸륵하다 하겠다.
그러나 1000년 전에 쓴 이 묘로 인해 현재까지 인물이 많이 난다고 말하는 것은 물리적
동기감응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의 이름난 묘소는 대부분 이와 같은 형편이니, 작금의 風水界는
기존의 잘못된 정보와 지식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古云 : 山如破碎倚斜, 縱合卦例何爲
(산이 허물어지고 기울며 경사졌는데, 설령 卦例가 맞다한들 무엇하리요)
한 확 묘를 풀이한 글들
(1), A
묘소의 향은 자좌오향으로 정남향이다. 물은 좌에서 우로 흐르는 左水到右로 물이 빠져나가는
파구 방위는 丁未破이다.
이는 팔십팔향법 가운데 自旺向에 해당하는 향법이다.
자왕향은 자손들이 번창해서 남자는 총명하고 여자는 수려하며 부귀와 장수를 불러온다는 훌륭한 향이다.
(2), B
수구는 丁破이니 木局에 臨官龍이다.
자연은 좌측의 제왕향에서 득수하여 우측인 목국의 묘향으로 빠지며 청룡의 자락이 혈 앞을 활처럼
감싸 안으며 책을 펼쳐놓은 것과 같은 안산을 이루었다.
이 경우 목국의 제왕향인 경좌갑향을 놓으면 주위의 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므로 목국의 자왕향인
임좌병향을 놓아야 후손이 발부발귀하는 자리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명당에 위치한 묘일 지라도 좌향을 잘못 잡아 허사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다행스럽게도 한확의 묘는 좌향마저도 임좌병향이라 이기론 상으로도 완벽한 명당임을 확인했다.
(3), C
이곳은 풍수 상 모란반개형의 전형이다.
즉 모란꽃이 반쯤 핀 듯한 형국으로 혈 주변에는 꽃봉오리처럼 생긴 작은 산이 여러 개 둘러싸여 있으며,
혈은 꽃의 중심에 있고 안산은 꽃잎에 해당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반쯤 벌어진 모란의 꽃잎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모란의 별명은 꽃의 여왕인 花王이다.
모란은 풍성한 꽃잎과 화려한 빛깔로 인해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모란형 명당은 만개보다 반개를 한 수 위로 친다.
만개는 절정을 뜻해 점차 시들어 가지만, 반개는 절정을 향해 점점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 한씨가 조선조에서 정승 13명, 왕비 6명, 부마 4명, 공신 24명을 위시해 수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한 데는 일반적으로 이곳 풍수가 한몫 했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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