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관 전 발복 할 자리를 잡은 용한 지관과 정조
조선 정조때의 일이었다. 정조대왕은 즉위하자마자 억울하게 죽은 부친 사도세자의 묘자리를 잡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한 지관을 데리고 묘자리를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지금의 태안읍 안녕리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때 한 떠꺼머리 총각이 지게에다 송장을 실어놓고 땅을 파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 정조는 궁금하여
그 청년에게 연유를 물었다.
"애 애, 너 뭐하느냐?" "우리 아버지를 여기 뫼실려고 땅을 팝니다"
그런데 그 땅은 정조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송장을 묻기만 하면 자손이 금방 죽을 아주 나쁜 자리로 보였다.
그래서 정조는 "애, 너 그 자리에 묘를 쓰지 말아라." "왜 그래요?
남이야 쓰던말던." "그 자리 누가 잡아주던?" "요 너머 가면 지관이 있는데 그 지관이 잡아 줍디다."
"응 그래, 너 내가 돈 백냥을 줄테니 그 묘자를 쓰지 말고 다른 데에 묻어라."
그러자 총각은 돈 백냥을 준다는 말에 얼른 땅 파는 것을 멈추었다.
정조가 가만 생각해 보니 지관이라면 남 잘되라고 묘자리를 잡아 주어야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저런 나쁜 자리를 잡아주나 하는 생각에 그 자관이 얄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한번 따져보기로 하고 즉시 고개를 넘어 그 지관이 살고 있다는 아주 허름한 오두막을 찾아갔다.
정조대왕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넌즈시 물어보았다.
"여보시오. 어째서 그런 자리에 묘 자리를 잡아줘서 후손을 망하게 하시오?" 그러자
지관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아! 모르시는 말씀이요. 그 자리는 하관 전에 돈 백 냥이 생길 자리요."
정조대왕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럼 그렇게 잘아시는 양반이 어째 이런 오막살이에 사시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지관은 "아! 이래뵈도 이 자리가 언젠가는 임금님이 오셔서 앉을 자리이외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정조는 이만큼 아는사람이면 됐다 싶어 그 지관을 데리고 묘자리를 잡으니
그것이 지금의 융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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