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225-1호 옥적(玉笛)

오늘의 쉼터 2008. 5. 10. 11:43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25-1호
명 칭 옥적(玉笛)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옥석공예/ 옥공예
수량/면적 .
지 정 일 1990.10.10
소 재 지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300
시 대
소 유 자 .
관 리 자 .

일반설명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유품 5점 가운데 하나이다. 맹사성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때 예조좌랑을 시작으로 1427년 우의정이 되었다. 우의정으로 있으면서『태종실록』편찬의 감수를 맡았는데, 세종임금이 실록을 보고싶어 하자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사관이 두려워 일을 할 수 없다 ”하여 반대했다. 집을 들어오고 나갈때는 항상 소를 타고 다녀 사람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옥적은 백옥으로 만든 피리로 젓대 혹은 횡적이라고도 하며, 길이 50.5㎝, 지름 2.7㎝이다. 일제시대때 네 토막으로 부러져 백동관(白銅管)으로 싸서 수리하였다. 옥은 약간 황색과 옥색이 도는 백옥계열의 돌인데, 대나무 세마디를 깎아 새겼다. 구멍이 7개인데 소리는 지금의 대금 소리와 다르고 중금 소리와도 다르다. 그러나 다른 옥적에 비하면 비교적 잘 만든 작품으로 약간의 음정 차이는 있으나 고른 음정을 가지고 있다. 상징적인 악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물 중 이 옥적은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졌던 고불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유품으로 제작연대는 조선초기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박옥(玉)으로 만든 젓대, 즉 횡적(橫笛)이다. 현재 이 옥적(玉笛)은 4토막으로 부러져 있는 것을 수리(修理)하였다. 옥적(玉笛)은 약간의 음정차(音程差)가 있긴 하더라도 고른 음정(音程)을 나타내고 있다. 제작년대(製作年代)는 조선초기(朝鮮初期)로 추정(推定)된다.

옥피리의 길이는 50.5㎝이다.
 
 
 
옥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