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225-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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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채석포도문일월연(彩石葡萄紋日月硯) |
분 류 | |
수량/면적 | |
지 정 일 | 1990.10.10 |
소 재 지 |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300 |
시 대 | |
소 유 자 | |
관 리 자 | |
일반설명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유품 5점 가운데 하나이다. 맹사성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때 예조좌랑을 시작으로 1427년 우의정이 되었다. 우의정으로 있으면서『태종실록』편찬의 감수를 맡았는데, 세종임금이 실록을 보고싶어 하자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사관이 두려워 일을 할 수 없다 ”하여 반대했다. 집을 들고날 때는 항상 소를 타고 다녀 사람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채석(彩石) 포도문(葡萄紋) 일월연(日月硯)은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자색연의 일종으로 벼루이다. 채석이라고 붙인 것은 담청 혹은 황백색의 돌켜가 담청색의 돌 사이에 들어가 있어 이것을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조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벼루의 두께는 25㎜에 불과한데 그 중 5㎜가 담청의 켯돌이고 양각문은 7㎜정도까지 도드라지게 새겼다. 가운데 둥근 면을 두고 그 주위에 한 그루의 단풍나무와 포도덩굴을 올렸으며, 두 마리의 원숭이들을 사실적으로 나타내 조선시대 공예품으로서는 드물게 회화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그 재질이나 새긴 솜씨 등이 단연 두드러진 유물로서 조선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벼루의 재료는 평북 곽산지방에서 나는 돌이며, 벼루의 크기는 25.0 ×15.5 ×2.5㎝이다.
전문설명
이 벼루는 우리나라에서 전국적(全國的)인 분포(分布)를 보이는 자색연(紫色硯)의 일종이다. 이 벼루의 경우 두께가 25㎜에 불과한데 그 중 5㎜(부위에 따라 일정치 않음)가 담청(談靑)의 켯돌이고 양각(陽刻)된 조각자체(彫刻字體)는 7㎜정도까지 도드라지게 섭새김하였다. 또한 그 재질(材質)이나 새김 솜씨도 단연 두드러진 유물(遺物)로서 조선전기(朝鮮前期)에 제작(製作)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이 벼루의 연재(硯材)는 평북(平北) 곽산(郭山) 지방(地方)의 채석(彩石)을 이용(利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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