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1824∼?)이 입던 금관조복 중 금관 1점이다. 금관은 조복에 갖추어 쓰던 모자로 양관(梁冠)이라고도 하는데, 량(梁)은 모자의 앞면에서 꼭대기를 지나 뒷면까지 연결되어 붙여진 금색선을 말하며, 그 수에 따라 계급이 구분된다. 이 금관은 5량관으로, 1품의 관리가 쓰던 금관이다.
금관의 모양은 원통형인데 머리둘레와 뒷면 전체에 금칠이 되어 화려하고 윗부분은 검은 비단으로 싸여 있다. 뒷면은 금칠한 나무비녀 2개를 꽂아 고정하였고 비녀의 양 끝에는 술을 감아 늘어 뜨렸다.
이 금관은 1948년 석주선씨가 심동신의 7대 손자며느리로부터 인수받았다고 하며,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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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낮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경사진 대지 위에 동쪽을 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 양반집으로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의 할아버지인 권오상(權五常)이 1589년(선조 22)에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주택으로 그 유례가 드물고 학술적 가치가 높다.
별당인 사랑채(보물 제457호)는 앞쪽에 돌출되어 있으며, 그 왼쪽 뒤로 ‘ㅁ’자형 몸채를 지어 별당과 연결하였다. 별당의 왼쪽에는 백승각이 별당을 바라보고 있고, 별당의 오른쪽 뒤로는 사당이 있다. 별당 앞쪽에도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별당 전면에 높은 축대 및 대청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배면으로 오를 수 있고, 사랑채 뒤로는 2칸의 날개채를 달아 안채 행랑과 연결되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랑채인 별당이 대청 위주의 누각식으로 지었고 안채에서는 건넌방에 비해 안방이 과도하게 강한 공간 위계를 가지며 행랑과 날개채 등을 통해 안채와 사랑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조선 전기 접객 중심의 살림집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조선 전기 누각형 접객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가 된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본 종택(宗宅) 소유자의 11대조인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郡玉)의 찬자(撰者)로서 이름이 알려져 있으나 이 건물은 그의 조부때 지은 것으로 임란전(壬亂前) 건축이라 한다. 원래는 대문간(大門間)채와 사랑채의 좌측에 연접된 부속채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전체건물은 숲이 우거진 낮은 뒷동산을 배경삼아 다소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으로 좌정(坐定)하였다. 우측 전면으로 돌출(突出)한 사랑채(별당(別堂))는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위에 주위에 난간을 돌려 누(樓)집 모양으로 꾸몄으며 좌측의 ㄱ자로 꺾어 후퇴(後退)시킨 안채도 2단(二段)으로 높이 쌓은 축대위에 세우고 중문(中門)앞에 여러 단의 계단을 설치하고 있어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게 보이며 고졸한 맛도 풍긴다. 사당은 안채 우측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
안채에서 정면 3칸중 좌측칸이 안방이고 나머지 2칸은 보방향 2칸의 우물마루를 깐 안대청으로 전면은 개방되었다. 안방의 좌측 건물의 모서리에 도장방을 단칸(單間) 설치하여 안방과 부엌에서 출입하게 하였으며 도장방 앞에 안방과 접하여 마당쪽으로 부엌 3칸을 길게 뽑았다. 안대청의 우측에는 근년에 반칸(半間)을 앞으로 확장한 칸반(間半) 크기의 건넌방이 있고 좁아진 앞마루를 건너 안사랑 후원으로 통하는 문간(門間)과 고방이 마당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앞채의 중문간은 안마당의 좌측에 치우쳐 있고 우측으로 아랫방 2칸과 고방 단칸이 자리잡았으며 연접하여 우측 ㄱ자형의 안사랑채가 놓여 사랑채와 연결되었다. 안사랑 부분은 안사랑방과 양면이 개방된 마루와 사랑채 뒤쪽의 동마루에 연결되는 쪽마루로된 통로 등으로 이루어졌다.
안채는 자연석 초석(礎石)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대청 상부가구는 오량가(五梁架)로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워 종도리(宗道里)를 받고 있다. 민도리에 홑처마 집으로 들보밑의 보아지는 고졸한 모양의 초각(草刻)을 보이고 있다. 안대청 뒷벽에는 각각 두짝 열개의 널문이 달려 있는데 문틀의 중앙에는 수직으로 중간설주가 서 있으며 이러한 유구(遺構)는 다락에 낸 살창문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랑채는 1967. 6. 23 보물 제457호로 지정하였다.
사당은 3칸 정면의 어간(御間)에는 양여닫이, 협간(夾間)에는 외여닫이 궁판 세살문이 달려 있는데 어간의 문틀 중앙에 수직으로 중간설주가 서 있다. 그런데 이 중간설주의 단면은 T자형으로 문받이를 겸하고 있으며 위쪽으로 밀어 올려서 떼어낼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출입문에 중간 설주가 서있는 예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장판각에서도 볼 수 있으나 착탈식(着脫式)으로 된 것으로는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본 건물은 조선 초기말엽의 우수한 건축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특히 중간설주의 유구(遺構)등은 조선초 ·중기 건축의 구조와 양식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뒤에서 본 전경 안대문과 안사랑채 안마당에서 올려다본 처마와 지붕 안채 성주 안채 전경 안대문간 부뚜막 별당에서 안사랑채로 통하는 통로와 협문 별당 대청 상부가구 별당 대청 별당 예천권씨종택 안채 대청 예천권씨종택 담장 너머로 본 모습 담장 백승각 사당 안뜰 사당 옆면 사당 출입문 사당 옆면 전경 표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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