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203호 안동 송소종택

오늘의 쉼터 2008. 5. 8. 21:47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03호

명     칭

안동송소종택 (安東松巢宗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4필지/ 지정구역 960㎡, 보호구역 4,343㎡

지 정 일 1984.12.24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와룡면 샘골길 43-40 (이상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권응룡 
관 리 자

안두원 

일반설명

송소 권우(1552∼1590)의 후손들이 사는 종택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권우가 지은 저택이라고 전하였지만 안대청 대들보에 순조 24년(1824)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전형적인 재사(齋舍)의 형식을 지녔는데도 뒷산에 사당이 있는 이유는 이 집이 종가의 살림집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제사를 위한 정침이 마을 가운데에 있었는데, 이 종택이 지어진 후 어느 시기에 그 기능을 이곳으로 옮긴 듯하다. 이 집에 ‘이계재사록’이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원래 집 이름이 ‘이계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一자형 안채와 ㄷ자형 아래채가 마주하며 튼 ㅁ자형을 이루었고 트인 부분은 담장을 쌓아서 막았다. 집 아래쪽에는 문중에서 지은 서당인 ‘이계서당’이 있다. 이러한 재사형 집을 종가로 사용하는 경우는 특별한 계기와 규범상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집을 지을 당시의 용도가 주택이었는지 재사였는지 밝히는 연구가 좀 더 필요한 흥미있는 건물이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송소(松巢) 권우(權宇)(?∼1573, 선조(宣祖)6년, 진사(進士), 퇴계문인(退溪門人) 광해군사전(光海君師傳),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겸(承政院左承旨兼) 경정참찬관(經정參贊官)의 제택(第宅)이라 전하지만 안대청 서쪽 대들보의 상량기명(上樑記銘)에는 순조(純祖)24년(1824) 개기(開基)라 하였으니 송소의 종손(宗孫) 종택(宗宅)이라 보아야 할 것 같다. 송소는 현 종손 응룡(應龍)의 12대조라 한다.

집은 전형적인 재사(齋舍)의 형식을 지녔으면서 후산(後山)에 사당(祠堂)을 지은 것은 이 집이 종가의 살림집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一자형 안채와 ㄷ자형 아래채가 상 ·하로 마주하여 튼ㅁ자형을 이루었으며 동간(棟間)의 트인 부분은 담장을 쌓아 마감하였다.

안채의 길이는 5칸이고 너비는 2칸이며 대청칸에도 모두 퇴주(退柱)를 세운점은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동 ·서 양편(兩便)은 온돌방이고 중(中) 6칸은 대청(大廳)과 툇마루이다. 동온돌(東溫突)은 방을 줄여서 칸반(間半)으로 하고 반칸(半間)의 전퇴(前退)를 두었다. 대청의 서쪽 대들보에는 「숭정기원후사갑신이월이십이일개기삼월초택일입주동일상량성조(崇禎紀元後四甲申二月二十二日開基三月初七日立 柱同日上樑成造)라 묵서(墨書)하였다. 이 상량문(上樑文)으로서 이 집의 창건(創建)은 송소의 재세년대(在世年代)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사형(齋舍形)집을 종가(宗家)로 사용하는 경우는 각별한 계기와 규범상의 문제를 수반할 것이라는 점에서 구명(究明)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래채도 길이가 5칸이며 여기에 고패로 2칸반(間半)이 더 있는 통집이다. 온돌방과 부엌, 고방(庫房), 마구간, 대문 등을 갖추었으며 그 배치형식이 역시 재사의 그것과 같다. 마구간이 대문옆외에 안마당에 또 간반이 들여진 것은 마굿간이 안으로 가장 깊숙히 들어선 예가 될 것이다. 대문 왼편 2칸의 부엌에는 “들마루 ”1좌(坐)가 있는데 이것도 드문 예에 속할 것이며 찬마루로 쓰였을 것이다.

이 집에는 지금 “이계재사도록(伊溪齋舍都錄) ”이 전래(傳來)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종택이라 불리기 전에는 원명(原名)이 “이계재사(伊溪齋舍) ”였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 재하(齋下) 동중(洞中)에는 “이계서당(伊溪書堂) ”이라 게액(揭額)된 종중서당(宗中書堂)이 있는데 원래 이계서숙(伊溪書塾)은 부(父) 대기씨(大器氏)가 창건한 것이므로 그 이후로는 줄곳 지명인 이계(伊溪)라 관용(慣用)되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서당은 길이가 4칸, 너비가 2칸이며 一자 동향집이다. 중(中) 4칸이 청(廳)이고 양단(兩端)은 각 2칸씩의 온돌방이며 홑처마 팔작(八作)집이다. 생각컨대 이계서당 창건당시에는 그 정침(正寢)이 촌중(村中)에 있었고 지금의 종택인 재사는 후건(後建)(순조(純祖)24년)된 것으로서 촌중(村中) 정침의 기능이 어느 시기에 끊겨 종택이 재사로 이동한 것이 아닐런지 추측해 보는 것이다.




안대청에서 내다본 전경

사당에서 내려다본 전경

안대청 상부가구

안대청

전경

사당

안채

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습

외양간

원경

헛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