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99호 서산 경주김씨 고택

오늘의 쉼터 2008. 5. 8. 13:16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99호

명     칭

서산 경주김씨 고택 (瑞山 慶州金氏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4필지/1,534㎡

지 정 일 1984.12.24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 (유계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김기현 
관 리 자

김기현 

일반설명

평야마을에 자리잡아 북동향하고 있는 기와집으로, 지은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중반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一'자형의 행랑채 안쪽으로 'ㅁ'자형의 안채가 있고 안채의 동쪽 옆에 사랑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다.

행랑채는 7칸 규모로 왼쪽 끝에 바깥대문이 설치되어 있고, 부엌과 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향한 안채는 중문을 들어서서 안마당의 오른쪽에 있다. 이는 대부분의 중·상류주택이 몸채를 안마당 건너편에 두는 것과는 달리, 일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간결한 구조를 한 3칸집으로, 사랑채 남쪽에 단 차양지붕이 돋보인다. 차양지붕은 사랑채 1칸 앞에 팔모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얹은 것이다. 앞면에는 겹처마를, 뒷면에는 홑처마를 달아 앞쪽을 더 길게 처리하였다. 안채의 뒷뜰에는 3칸의 초가집이 있는데 일종의 공부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집으로, 공간의 짜임새가 빈틈없이 구성되었으며 호도나무나 감나무 등이 어우러져 소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평지 마을에 자리잡은 이 집은 사자형(巳字形) 평면에 一자 행랑채를 곁들여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룬다. 안채는 ㅁ자로서 동향하여 배치되고 여기 오른쪽 모에 날개를 달아서 사랑채를 붙였는데 이것은 안채와 직각축으로 놓여 남향하였다. 사랑마당 동쪽에는 안채 축에 맞춰 광채를 배치하고 사랑채 북쪽에는 사랑채 축에 맞춰 세로로 여러가지 시설물을 배열하였다. 바깥대문은 단칸(單間)으로 만들어져서 전체 외곽(外廓)의 동북쪽 모에 직각축으로 놓였으며 중문(中門)역시 안채 동북쪽 모에 놓여서 안방에 직각축으로 위치했다. 중문간 옆에는 안채와 외양간 사이에 조그만 대문간(大門間)을 놓고 원장(垣墻)을 쳐서 뒤뜰과 바깥마당을 구분하였으며 또한 사랑마당 남쪽 원장에는 집을 짓지 않은 대신 조그만 회랑모양의 집담을 만들어서 내정(內庭)의 공간감을 확실하게 형성한다. 부속채등은 여러 부분을 개조하였지만 안채와 사랑채의 상태로 볼 때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안채는 몸채인 가로칸만 6칸 전퇴로 하고 나머지는 맞걸이집으로 하였으며 사랑채는 3칸 전퇴집이다. 간살이는 남서쪽으로 부터 상하 3칸 부엌, 오른쪽으로 아래 ·웃방, 2칸대청, 앞퇴에는 툇마루, 다시 북서쪽 모에는 건넌방이 놓였다. 앞으로 꺽어져서 작은부엌, 아랫방, 대문간, 사랑부엌, 다시 남쪽으로 꺾어져서 헛간, 광, 볏광, 2칸 헛간, 다시 뒤로 돌아서 2개의 광이 배열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남도식(南道式) 평면 배열인 셈이다. 사랑부엌 앞에는 2칸의 사랑방이 놓이고 맨 끝에 사랑대청이 배열되었으며 사랑채의 앞퇴는 모두 툇마루이다.

구조는 안채 가로간과 사랑채는 1고주5량이며 나머지는 모두 3량 구조이다. 안채는 납도리로서 모를 굴렸으며 장혀로 받치고 있다. 그러나 사랑채는 모를 굴린 납도리를 썼으나 종도리에만 장혀를 받쳤다. 안채의 보는 모를 굴린 네모꼴이고 도래걷이와 박데떼기를 깨끗하게 바심질 했다. 기둥은 굵고 모는 흔치 않은 민모로 접었으며 면에는 중심에 쌍사를 새겼다. 대청에는 분합문 위에 교창을 만들어 끼웠는데 보통것 보다는 꽤 크다. 주초(柱礎)는 낮은 네모꼴이고 댓돌은 화강암 장대석 외벌대이다. 지붕은 합각인데 안채 안면과 사랑채 동쪽 전면에만 만들어질 뿐 나머지는 모임지붕으로 처리했으며 합각면은 별로 크지 않다.

사랑채의 구조기법은 안채보다 오히려 간결하게 처리되었는데 사랑남쪽에 만들어진 차양(遮陽)은 반대로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사랑채 앞 1칸 거리에 팔모기둥을 세우고 긴보를 사랑 앞기둥에 걸치며 여기에 팔모 창방을 걸고 소로를 끼워서 장혀를 받고 납도리를 걸쳐 대었는데 이것을 기둥머리와 긴보 중앙에 올려서 사이에 종보를 걸쳤다. 대공은 초각을 복잡하게 새긴 파련대공으로 하고 종도리도 중도리와 같은 구조로 하여 이 위에 서까래를 걸쳤는데 전면은 부연을 덧단 겹처마이고 후면은 부연이 없다. 상부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하였다.

사랑마당에 면한 행랑채는 맞걸이 모임지붕으로서 7칸 一자집이다. 가운데에 부엌을 두고 남쪽에 행랑방, 북쪽에 광을 두었으며 대문간은 단칸이고 모임지붕이다. 중문간 북쪽 바깥마당에도 맞걸이 3칸집이 마련되었는데 예전에는 침모가 살았다고 하며 그 옆에는 마구간이 있다. 뒤뜰에 있는 초당(草堂)은 맞걸이 3칸 초가집으로서 구들과 광으로 이루어졌는데 일종의 공부방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공간의 짜임새는 빈틈 없이 완벽하게 구성되었고 사랑마당의 호도나무나 뒤안의 감나무들이 어우러져 집안의 소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는 있으나 특별한 정원 시설물은 없다.




전경

사랑 마루

사랑채

초당

안채와 안마당

사랑채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