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68호 영덕 충효당 종택

오늘의 쉼터 2008. 5. 2. 13:22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68호
명     칭영덕 충효당 종택 (盈德 忠孝堂 宗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2필지/지정구역 2,215㎡, 보호구역 3,335㎡
지 정 일

1984.01.14

소 재 지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6길 48 (인량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이홍선 
관 리 자이지화 

일반설명

조선 성종 때에 처음 세운 집으로 이애 선생이 짓고, 이황 선생의 성리학을계승·발전시킨 이현일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뒷쪽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며 충효당(사랑채)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건물이다.

안채, 사랑채, 마구간, 사당, 정자 등이 넓은 대지 위에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고, 후원에도 상당히 넓은 대밭이 있는 대규모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어울려서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의 사랑채가 마주 놓여 있는데 사랑채가 동서로 길게 뻗어있다. 앞쪽 들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 왼쪽에 사랑채, 오른쪽에 안채가 있고 안채 뒷쪽에 사당이 있다. 사당은 담장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높직한 기단 위에 지금도 후학의 교육장으로 이용되는 충효당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이 고루 갖추어 있는 조선시대 양반집으로 처음 지은 것은 조선 초기로 추측되나 이 집은 후대에 옮긴 건물이다. 그러나 안채는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시기가 조선 중기로 짐작되는 건물로, 다소 변형된 듯 보이지만 조선 시대 주택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전문설명


인량동(仁良洞)의 팔대종가(八大宗家)가 취락을 이루고 사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산록(山麓)의 양지바른 자리에 터전을 잡았다. 현소유자 근화(根華)씨(70여재(餘才), 재령이씨(載寧 李氏))의 15대조가 입향시조(入鄕始祖)로 조선 성종연간(成宗年間)에 종택을 초창(初創)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집은 뒤쪽의 한단 높은 자리에 이건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확실한 이건연대는 알 수 없다. 충효당(忠孝堂)이란 사랑채는 정자(亭子)와 같은 구성을 보이는데 후학의 교육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임란후(壬亂後)의 건축이라 한다.

전관(全觀)에서 북쪽은 태백산맥이 둘러섰고 남쪽은 탁 트인 들판의 한가운데로 송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길지(吉地)에 마을이 동서로 길게 확산되어 있으며, 산록을 파고드는 골의 형상이 나래형국 이라하여 나래골이라 부른다. 본 가옥은 골의 동단(東端) 아늑한 자리를 차지하여 앞쪽 들판을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좌에 사랑채, 우에 안채를 앉히고 안채의 후방 경사진 대나무숲 속에 사당 일곽을 배치하였다.

반듯한 내정(內庭) 정면에는 3칸 대청(大廳)이 놓이고 좌측에 샛방, 우측에 도장방과 안방이 접하였다. 내정의 좌측 사랑방 부분은 샛방에서 1칸왼편으로 벗어나 있는데, 이는 내정을 넓히기 위하여 확장된 것으로 초창평면(初創平面)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안채 부분의 목재에서도 구재(舊材)가 많이 보이고 있어 이 부분도 이건시 다소의 변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청의 후면벽중(後面壁中) 우측 2칸의 각칸에 있는 두짝열개 널문에 중간설주가 서 있는데 윗틀 하면(下面)에 별도의 오래된 장부구멍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구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건시기를 조선 중기로 추정하게 한다. 안채의 구조는 높은 축대를 쌓고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나 대청앞 기둥만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다. 대청 상부는 삼량가(三樑架)에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운 간략한 가구(架構)로 되어 있다.

높은 자연석 축대위에 서 있는 사랑채(충효당(忠孝堂))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ㄱ자형으로 2칸반 크기의 온돌방을 설치한 부분 이외는 우물마루를 깐 넓은 마루방으로 꾸몄다. 구조는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대청 상부 가구는 오량가(五樑架)로 파련대공의 윗몸에 첨차를 끼워 종도리(宗道里)를 받았으며 합각 하부만 우물반자로 처리하였다.

이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祠堂)이 구존(具存)하는 조선시대 반가(班家)로 초창(初創)은 조선 초기로 추측되나 후대에 이건한 건물이다.

그러나 안채는 현위치로의 이건시기가 조선 중기로 짐작되는 고졸한 건축물로 다소간의 변형은 보이나 조선시대 주택연구의 중요한 유구(遺構)로 판단된다.




안채

전경

중문간채 전경

충효당

충효당 마루방 내부

충효당 마루방에서 본 온돌방

충효당 온돌방 내부

영덕충효당

영덕충효당

영덕충효당내부

영덕충효당온돌방

영덕충효당후면

영덕충효당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