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들어가는 곳에 자리잡은 건물로 비교적 넓은 평야에 인접하여 있고, 해안과도 가까운 지역이어서 풍수지리상 터가 좋은 곳이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 문간채가 규모있게 구성되어 있는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곳간채와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맞대고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간채는 사랑채 서쪽에 있으며, 안마당 서쪽에는 곳간채가 있고, 동쪽에는 아래채가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중문간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하도록 나누었다.
대문간채는 5칸으로 중앙의 1칸은 문간으로 솟을대문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여러 개 있어 머슴이나 일꾼들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문의 오른쪽에 있는 곳간채는 오른쪽 끝에 안채에 통하는 문이 있으며, 2칸의 광과 1칸의 마루방으로 되어 있다. 광은 내부가 트여 있다.
사랑채는 남도식 구성으로 서쪽부터 부엌·사랑방·사랑윗방·대청의 순으로 놓여 있다. 부엌과 사랑윗방 뒷쪽에는 툇마루가 있고, 부엌의 윗쪽에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사랑방부터 대청까지 앞쪽에 툇마루가 있다.
안채는 동쪽 끝에 부엌이 있어 장독대가 있는 곳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랑채, 아래채와는 가깝게 있어서 편리한 점이 많다. 부엌 옆에 큰방 ·대청 ·작은방이 있으며, 큰방부터 작은방 앞까지는 툇마루가 깔려있다. 작은방은 옆쪽에 출입문을 달아서 하나의 딴 공간으로 꾸몄다. 안채의 동쪽에는 방과 대청으로 된 아래채가 있고, 사랑채 뒷면에는 작은 광이 별도로 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의 안쪽으로는 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으며, 사당은 따로 없다.
전문설명
강골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들어나는 곳에 위치했다. 이와 같이 부농의집이 산자락 아래로 내려와 남들의 눈에 띄게 있는 것은 건축년대가 올라가지 않는다. 집 앞 솟을대문에는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는데 「해기원후(海紀元後) 천구백사십년 경진팔월(庚辰八月) 을유삭초일일(乙酉朔初一日) 병자진시입주(丙子辰時立柱) 미시상량(未時上樑)」이라 하여 1904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나 사랑채는 연대가 휠씬 올라가서 19세기 말 정도로 추정된다.
집 앞에는 예쁜 연못이 조성되어 못 가운데는 조그만 섬(소도(小島))이 있고 버드나무가 있다. 그 뒤에 솟을대문이 서남향하여(가로로) 자리하며 그 뒤에 사랑채가 사랑마당을 사이하고 축을 맞춰 배치되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간채는 사랑채 보다 약간 앞으로 나오면서 사랑채 서쪽에 같은 향으로 앉았다. 중문간 뒤가 안마당이며 안마당 뒤 안채가 중문간과 축을 맞춰 놓였다. 안마당 서쪽에는 광채가 세로로 배치되고 안채 동쪽에는 다시 1칸을 뒤로 물러 아래채가 배치되었다. 이 앞이 뒤뜰 공간이며 여기에는 사랑채 뒤쪽에 붙여서 벼 뒤주와 우물이 시설되었다. 장독대는 안채의 서쪽인 광채와의 모퉁이 공간을 담장으로 막고 그 사이에 일각대문(一角大門)을 만들어서 따로 마련했다. 담장은 솟을대문까지를 막아서 사랑마당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으며 안마당과 사랑마당도 따로 구획해서 중문간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치 못하도록 계획했다. 그러나 사랑채는 앞으로 사랑마당으로 면하지만 뒤로는 안마당으로 통했다.
안채는 전형적인 남도식의 5칸 전후좌우퇴집이다. 동쪽에 부엌을 두고 다음이 큰방, 복판은 2칸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다. 부엌의 앞퇴는 봉당이고 아랫퇴는 살강으로 이용된다. 부엌의 복판칸에는 다락이 시설되었다. 큰방으로부터 작은방 앞까지의 앞툇마루에는 툇마루가 깔리며 작은방의 머릿퇴에도 툇마루가 놓였는데 측면에 출입문시설을 해서 하나의 딴 공간으로 꾸몄다. 앞 모퇴는 특이하게 높은 마루로 만들어졌으며 뒤 모퇴에는 볏광이 마련되었다. 작은방의 부뚜막은 뒷퇴에 구축(構築)되며 뒷벽을 터서 굴묵으로 쓴다. 대청의 앞문도 여느 방과 마찬가지로 세살문으로 만들어서 안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구조는 2고주5량인데 대청중앙만 긴보 5량이다.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으며 보 밑에는 단이를 끼웠다. 네모기둥이며 대략 네모꼴 주초로서 화강암 가공석이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쌓기 세벌대 높이이며, 지붕은 합각으로서 물결무늬를 새겼다.
사랑채 역시 남도식 평면으로서 4칸 전후머리퇴집에 대청을 끝머리에 배치하였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복판에 부엌, 사랑방,「갓방」(사랑웃방), 대청의 차례로 놓였다. 부엌 뒷퇴에는 툇마루가 놓이고 사랑방 뒷퇴는 반침, 사랑웃방 뒷퇴는 툇마루, 맨 끝 대청 뒷퇴에는 고방이 마련되었다. 부엌 복판간 상부는 다락이고 앞퇴는 봉당이며 사랑방으로 부터 대청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사랑방과 웃방의 사잇문은 개폐가 가능한 4짝 미서기가 시설되고 대청과 사랑웃방과의 사잇문 및 전면문은 분합문(分閤門)으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사대부집의 평면구성과 맥을 잇고 있다.
구조는 2고주5량으로서 납도리집인데 종도리만 굴도리이다. 도리의 모서리는 면으로 접고 장혀를 받쳤다. 대공은 판대공인데 둥글게 어깨를 굴렸다. 앞뒤의 평주에는 보 밑에 단이를 받쳤으며 바깥은 직절, 안은 빗절이다.
퇴보는 구부정하게 활꼴로 굽어져서 고주 머리에 맞춰졌다. 두리기둥이고 초석은 대강 둥근주초이며 댓돌은 막돌 바른층 쌓기로서 세벌대 정도 높이이다. 지붕은 합각골기와이다.
문간채는 맞걸이 5칸집으로서 양 측면은 합각으로 처리하고 대문간은 솟을지붕으로 만들어서 중앙을 강조했다. 간살이는 서쪽에 부엌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구들이다. 중문간채는 사랑마당 보다 몇 단 높은자리에 위치하며 맞걸이 4칸집으로 구성되었다. 지붕은 모임이며 간살이는 동쪽에 대문칸을 두고 나머지 3칸은 모두 광이, 광 바닥에는 우물마루가 깔렸으므로 그 이용은 고방에 가깝다.
아래채는 2칸 좌우전퇴집이다. 전퇴에는 툇마루가 깔렸고 서쪽 아랫퇴에는 굴묵, 다음은 아랫방, 오른쪽에 대청, 머릿퇴에 고방이 배치되었다. 광채 역시 맞걸이 4칸집이며 광으로만 이루어졌고 지붕은 박공이다. 벼 뒤주는 여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서 단칸 고상식구조이며 박공지붕이다.
사랑채 사랑채 뒷면 안채 마당 전경 전경 안채 안채 내부 곳간채 공동우물 돌담 문간채 우측 문간채 전경 안채 대청 안채 연못 우물 장독대 사랑채 안채부엌 채광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