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욱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59호)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집으로 서쪽 담장을 따라 들어가면 조그만 초가대문이 나타나고 그 서쪽 대나무숲 가운데 크지 않은 사랑채가 있다. 사랑마당 서쪽에는 행랑채가 있고, 사랑채 뒤에 안채가 있으며, 안마당의 서쪽에 곳간채가 있다. 동쪽에는 이용욱씨 집 곳간채가 등지고 있어서 장독대만을 배치하였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보아 1891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으나 각각의 건물이 지어진 연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안채, 사랑채, 곳간채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집이다.
안채는 초가집으로 서쪽부터 툇마루가 있고 그 옆의 앞쪽에는 작은방, 뒤쪽에는 뒷방이 있다. 옆에는 대청, 큰방이 있는데 방 뒤쪽 아래에는 아궁이, 위에는 다락을 만들었다. 대청과 큰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맨끝에는 나중에 지은 방이 위·아래로 있다. 사랑채는 방을 가운데 두고 대청을 끝에 두는 남도식으로 서쪽부터 부엌·사랑아랫방·윗방·대청이 있다. 부엌 앞에는 부엌방이 있고, 대청은 개방되어 있다.
곳간채는 건물이 우람하고 커서 안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남쪽부터 3칸은 곳간이고 맨 위칸은 마루를 깔았다. 마루는 아마도 대청기능을 지녔던 듯하다. 대문간은 초가지붕으로 근래에 바깥에 화장실을 덧붙여서 ㄱ자형이 되었다. 서쪽에는 대문간이 있으며, 동쪽에는 화장실이 있다. 행랑채는 사랑채 앞에 있으며 살림을 맡아보던 하인의 집으로 추측된다. 북쪽에 부엌·큰방·작은방이 있으며 중앙에는 들마루가 있다. 들마루와 솟을대문이 대나무로 되어있어 특이하다.
집 주위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어서 집안에 별다른 정원수가 없는데도 그윽한 느낌을 준다.
전문설명
이 집은 중요민속자료 제 159호 이용욱(李容郁) 가옥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 담장을 따라 긴 고샅(올래)을 들어서면 조그만 초가 대문간이 나타나고 그 서쪽 대나무숲 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사랑채가 마련되었다. 사랑마당 뒤에는 사랑채가 앉고 서쪽에는 행랑채가 동향하여 배치되었다. 사랑채 뒤는 넓은 안마당이 되며 안채는 사랑채와의 축을 약간 동으로 옮겨 안마당 뒤쪽에 배치되었다. 안마당 서쪽은 곳간(광)채가 동향하고 동쪽은 바로 이용욱씨 가옥의 광채가 등을 하고 있어서 그 앞에 장독대를 배치했을 뿐이다. 집 주위는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어서 집 안에 별다른 정원수가 없는데도 그윽한 느낌을 준다.
상량문(上樑文)에「숭정(崇禎) 기원후 오주갑(五周甲) 신묘년(辛卯年) 신묘월(辛卯月) 신묘일(辛卯日) 신묘시(辛卯時) 수주상량(竪柱上樑)」이란 기록이 있으므로 건축년대는 1891년임을 알겠다. 그러나 모든 집은 한꺼번에 지은 것 같지는 않고 각 채 건축시기가 조금씩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안채의 동쪽 아랫방은 그 뒤에 증축한 것으로서 아마도 20세기 초에 집이 다시 개축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안채는 5칸 전후좌우퇴인 초가지붕집이다. 간살이는 서쪽으로 부터 머릿퇴에 툇마루를 깔고 앞칸에 작은방, 뒷칸에 뒷방을 두며 다음에 대청을, 다음에 큰방을 배치했다. 큰방 뒷퇴에는 반침이 시설되었는데 아래는 구들이고 상부는 다락이 만들어졌다. 대청과 큰방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놓였다. 다음은 상하칸과 아랫퇴 까지를 부엌으로 쓰고 맨 동쪽 아랫칸은 나중에 덧달아내서 상하아랫방을 두었다. 아랫방 앞뒤에는 쪽마루가 시설되고 뒷방에서부터 큰방까지의 뒤에도 역시 쪽마루가 깔렸다. 작은방 앞은 바로 토방이며 아궁이만 구축(構築)되었다. 특이한 것은 뒷방 모기둥에서 가로로 경계까지 담장을 쌓은 점인데 이것을 뒤로 구부려서 휴식공간으로서의 뒤안공간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장독대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과 더불어 이 집의 유일한 울타리이다.
구조는 2고주5량이고 납도리인데 전면 처마도리와 종도리에만 장혀를 치며 단이(보아지) 역시 전면 처마도리에만 쓰였다. 퇴보는 활꼴로 구부러져서 고주 기둥머리에 맞춰졌으며 대공은 둥근꼴 판대공이다. 기둥은 네모꼴이고 낮은 덤벙주초이며 자연석 바른층쌓기 두벌대 높이이다. 지붕은 우진각초가이다.
사랑채 역시 4칸 전후좌우퇴집으로서 역시 남도식 구성방법이다. (사랑채에서 구들을 가운데에 두고 대청을 끝에 두는 식)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부엌, 사랑아랫방, 사랑웃방, 대청의 차례로 배치되었다. 부엌의 앞칸은 부엌방이 배치되고 모퇴는 봉당이 되며 사랑아랫방과 웃방의 뒷퇴에는 골방으로서 반침이 마련되었다. 대청 뒷퇴에도 고방이 마련되고 사랑방과 대청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대청은 앞으로 개방하여 칸막이를 두지 않았다.
구조는 2고주5량으로서 납도리이며 장혀는 쓰지 않았다. 대공은 동자주 꼴이고 대들보도 도리와 거의 유사한 모양으로서 모죽인 네모꼴이다. 충량은 중도리를 이용해서 굽은 꼴로 걸쳐지며 말굽서까래로 처리했다. 댓돌은 자연석 면 바로쌓기로서 면이 큰돌을 아랫단에 면이 나타나게 쌓고 그 위에 긴 댓돌을 눕혀 쌓았다. 초석은 덤벙주초이고 네모꼴 기둥이다.
광채는 역시 3칸 전후좌우퇴집으로서 우진각 골기와지붕이다. 건물이 우람하고 커서 아마도 안채 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간살이는 남쪽으로부터 3칸은 앞퇴를 제외하고 곳간으로, 맨 웃칸은 마루를 깔았다. 곳간은 널마루를 깔았고 빈지널로 마감했다. 마루는 아마도 대청 기능을 지녔던 듯 동쪽과 북측이 개방되었다. 앞퇴와 북쪽 머릿퇴는 토방으로서 각각 전면이 트여 있으며 남동쪽 모퇴에는 볏광이 시설되었다. 막돌허튼층쌓기 높은 댓돌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대문간은 맞걸이 2칸 맞배 초가지붕인데 근래에 밖 변소를 덧붙이면서 평면과 지붕이 ㄱ자형집이 되었다. 간살이는 서쪽에 대문간을, 동쪽에 변소를 시설했는데 안팎으로 변소를 구분해 만들었다. 댓돌은 없고 덤벙주초 위에 격에 맞지 않는 커다란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맞걸이3량으로 처리한 납도리집이다.
행랑채는 사랑채 앞에 살림집으로 만들어져서 일종의 외거노비(청지기)의 집으로 추측되는 전형적인 3칸 전퇴집이다. 북쪽에 부엌, 복판에 큰방, 남쪽에 작은방이 놓였으며 앞퇴 중앙에는 들마루가 시설되고 부엌 앞에는 토방, 작은방은 앞퇴까지를 틔워서 쓰고 있다. 자연석 바른층쌓기 외벌대 높이이며 낮은 덤벙주초이다. 두리기둥 위에 굴도리를 받치고 지붕은 우진각 초가이다. 특이한 것은 들마루가 대나무살 편상형이고 문은 대나무 솟을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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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398445DF47A5223)
곳간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FC5445DF47A5320)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5D55445DF47A5524)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5A7E445DF47A5624)
마당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362445DF47A5726)
안채 내부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073445DF47A5823)
장독대 ![](https://t1.daumcdn.net/cfile/blog/995C52505DF47A591D)
곳간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A187505DF47A5A1C)
문간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3A2505DF47A5B23)
사랑채 측면 ![](https://t1.daumcdn.net/cfile/blog/9920CF505DF47A5C22)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7C1F505DF47A5E14)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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