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44호 영동 성장환 고택

오늘의 쉼터 2008. 5. 1. 17:06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44호
명     칭영동 성장환 고택 (永同 成章煥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3필지/지정구역 4,818㎡, 보호구역 5,317㎡
지 정 일 1984.01.10
소 재 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미촌길 67-11 (봉림리, 주택)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성위제
관 리 자성택제 

일반설명

안채·사랑채·광채·문간채·일각대문·사당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를 포함하여 모두 20세기 초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며, 광채만 18세기 정도로 추정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건물이다.

광채는 목조 초가지붕집으로 오른쪽의 한 칸만을 외부로 개방하여 헛간으로 쓰고 있을 뿐, 나머지 3칸은 판자벽을 두르고 마루를 깔아서 광으로 쓰고 있다. 이와 같은 건축수법과 구성은 대단히 오래된 기법이다. 안채는 광채의 왼쪽에 남북으로 위치하였는데, 뒤편의 동산은 숲이 잘 이루어져 운치가 있다. 왼쪽부터 건넌방·대청·안방·부엌이 배열되었다. 사당은 부엌 오른쪽에 자리했다. 사랑채는 안채의 맞은편에 위치했는데 사랑방 2칸·부엌·부엌방으로 되어있다. 사랑방의 뒷벽은 처마 밑으로 내밀어져 벽장으로 사용된다.


전문설명


안채가 집 가운데에 서향하여 자리하고 안마당을 사이로 앞쪽에 사랑채가 배치되었다. 안마당 남쪽에는 커다란 광채가 놓이며 광채 측면 서쪽이 경영공간으로서 바깥마당이 된다. 바깥마당 앞으로 대문간이 배치되며 대문간 남쪽으로 담장을 넓게 돌려 이웃과 경계했다. 북쪽으로는 ㄱ자로 담장을 꺾어 사랑채에 붙여서 사랑마당과 구분지으며 일각대문(一角大門)으로 연결했다. 안채 뒤는 넓은 텃밭이 있고 무성하며 수 많은 학(鶴)이 서식하여 마치 신선지경(神仙之景)에 이른 느낌이다. 이곳 나무 아래에 조그만 사당채가 배치되었다.

여기 모든 건물은 1927년에 건축(상량문(上樑文)에 의함)되었다는 안채까지를 포함하여 모두 20세기 초 이후의 건물인데 다만 광채만이 건축년대를 18세기 말까지 올려볼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조형물이다.

광채는 정면 4간, 측면 2간의 초가지붕 ·뼈대집으로서 서쪽 상하 2간만 앞쪽을 개방하여 헛간으로 쓰고 있을뿐 나머지 6간은 빈지널벽을 두르고 마루를 깔아서 광으로 쓰고 있다. 헛간의 뒷간은 오양간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상부에는 다락을 시설했다. 구조는 3량집인데 가운데에 고주를 세워서 곧바로 종도리를 받도록 계획했다. 이것은 가운데에 평주를 보내고 다시 헛창방 위에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는 것보다 훨씬 고식인 기법이다(이것을 3평주 3량집이라 함. 양통집의 일반적 구조방식이다). 기둥은 네모이며 도리는 납도리인데 가로 ·세로가 비슷한 민가기법이다. 대들보머리와는 사괘맞춤이고 꼬리는 고주 허리에 맞춰진다. 종도리는 장혀로 받치고 고주머리는 가름장 맞춤이다. 헛창방이 대들보보다 약간 아래쪽에 가로로 보내는데 단면은 대들보와 유사하다. 기둥굽에는 거의 토대와 비슷한 하방을 보내고 여기에 대문 돌쩌귀 신방을 제몸으로 붙였다. 이와 같이 넓다란 빈지널을 큼지막하게 세로로 끼우는 수법은 대단히 오래된 고식기법이며 특히 집 한복판에 고주를 세워서 종도리를 직접 받는 구조법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오랜 법식이다. 목재의 가공도 주로 자귀만을 사용해서 그 흔적을 지금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안채는 남도식의 전좌우퇴집이다. 부엌을 남쪽에 배치하여 전퇴까지를 함께 쓰고 우퇴에는 앞의 나뭇간과 뒤에 살강이 놓였다. 부뚜막 위에는 다락, 부엌 상부도 다락이 시설되었다. 안방은 1간 크기로 하여 앞퇴에는 툇마루가 놓이고 대청은 전퇴까지 터서 쓰며 앞은 개방되었다. 건넌방은 앞퇴를 함께 이용하며 좌퇴에는 모퇴에 마루를, 뒤는 골방을 시설했다. 구조는 3평주 3량식으로 내진주를 고주로 않고 평주로 처리했다. 지붕은 골기와 합각지붕이다.

사랑채 역시 남도식의 3간전퇴겹집 방식이다. 북쪽으로 아래 ·위에 사랑방을 배열하고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뒤로는 처마 밑을 이용하여 벽을 내밀고 골방을 만들었다. 아래 ·윗방 사이는 개방할 수 있는 미닫이로 구분된다. 오른쪽에는 앞에 부엌방과 뒤에 부엌이 반간 크기로 시설되었다. 원래는 초가집인듯 우진각지붕이다.

사랑채 앞의 일각대문은 단간 짜리로 만든 민가식 기법이다. 대문간은 맞걸이 3량집이며 역시 우진각지붕이다. 남쪽으로 대문간이 놓이고 헛간, 광이 차례로 배치되었다. 사당채는 단간전퇴집인데 마루를 깔았고 덤벙주초에 둥근기둥이다. 대들보와 퇴보는 수평으로 쓰고 기둥은 3개 모두 평주이다. 굴도리에 장혀를 받치고 대들보 밑에 단이를 끼웠으며 맞배지붕이다. 전면문은 판장문이고 북쪽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봉창(封窓)은 살창으로서 활꼴의 각(刻)이 되었다. 4개의 네모꼴 기둥을 세우고 고상식(高床式)으로 마루를 시설한 다음, 가로로 빈지널을 끼우고 초가로 삿갓지붕을 올렸다. 특히 하방의 맞춤 기법은 긴장부로 뺄목을 내밀고 메뚜기산지로 꽂은 것으로서 벌림쐐기나 산지 박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기법이다.




대문간채

사랑채 전면

안채

광채

곳간

광채 내부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