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41호 음성 잿말 고택

오늘의 쉼터 2008. 5. 1. 16:52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41호
명     칭음성 잿말 고택 (陰城 잿말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4필지/5,433㎡
지 정 일 1984.01.10
소 재 지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239-1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김주태
관 리 자김주태

일반설명

약 300년 전에 이익이 세운 집이라고 전하지만, 안채는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는 건물에 적힌 상량문에 따르면 1901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외부로 개방된 바깥마당에 一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그 뒷편 담장을 경계로 T자형 구조의 안채가 있다. 안채는 특이한 구조로 인해 왼쪽의 안마당, 오른쪽의 뒷마당을 구분짓고 있다. 집안으로의 출입은 사랑채 왼쪽의 대문을 통한 후 다시 담장에 설치된 일각문으로 안마당에 출입한다. 뒷마당은 부엌을 통해서 집안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는 왼쪽부터 대문간·사랑부엌·아랫방·윗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되었다. 부엌 앞의 부엌방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모두 앞면에 툇마루를 놓아 연결하였다. 높은 2단 축대 위에 서 있는데, 이는 지체 높은 사대부 집이나 축조연대가 떨어지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사랑채와 담장을 경계로 하여 뒤쪽에 위치한 안채는 뒷채가 발달한 보기 드문 형태이다. 일각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건넌방과 대청이 보이며 대청의 오른쪽으로 뒷방이 있다. 뒷방은 이 집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오른쪽에 대청과 윗방·아랫방이 앞 툇마루로 연결되어 배치되었다. 안방과 부엌은 뒷방과 연결이 되는 중심부분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부엌의 오른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드나드는 뒷마당에는 장독대와 기타 부엌 살림이 배치된다. 주부공간인 안공간이 발달되어 있는 건물로 경기지방 사대부 집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눈에 띠는 정원시설물은 없으나 공간의 짜임새가 인상적이며 아름답다. 특히 중문인 일각문을 통해 안마당에 이르고 부엌을 거쳐 뒷마당에 출입하는 공간구성은 이 집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설명


사랑채에는 상량문(上樑文)「대한광무오년(大韓光武五年) 신축이월초칠일(辛丑二月初七日) 신시상량(申時上樑)(략(略))계유생성조운조운(癸酉生成造運造運) 계좌정향(癸坐丁向)」이 남아있는데 이에 의하면 1901년에 신축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는 건축년대가 조금 더 올라가서 19세기 중엽 정도일 것으로 추측된다.

건물의 배치는 특이하게 이루어졌다. 외부로 개방된 바깥마당을 면해서 사랑채가 남향(정향(丁向))하여 높직이 자리하고 그 뒤로 안담장을 둘러서 T자형의 안채를 앞담에 붙여 배치했다. 이 안채가 구분하는 공간은 서쪽이 안마당, 동쪽이 뒷마당이 되며 뒤는 옆으로 길다란 뒤꼍이 마련되었다. 안마당 서쪽에는 역시 담장에 붙여서 광채가 놓였다. 집안으로의 출입은 사랑 서쪽 대문을 통해 안마당 앞담에 시설된 일각문(一角門)으로 통행하며 뒷마당으로는 부엌을 통해서 집안 사람만 드나들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사랑채 뒤와 앞담이 이루는 공간은 조그만 사이마당으로서 여유가 있으며 서쪽은 안마당의 광채가 가로막고 동쪽은 사랑채 끝에서 막는 대신 편문을 설치했다.

사랑채는 6간전퇴집으로서 서쪽으로부터 대문간, 사랑부엌, 사랑아랫방, 사랑웃방, 1간대청, 사랑건넌방의 차례로 구성되며 사랑부엌 앞퇴에는 부엌방이, 사랑방에서 건넌방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놓였다. 다만 건넌방 앞의 툇마루는 누마루로해서 아래에 부뚜막을 설치했다. 사랑부엌 상부에는 벽장과 다락이 시설되며 대문간과 부엌 뒷벽은 치지않고 개방한 채 출입한다. 대문은 서쪽 측벽에 설치하여 꺾어서 집안으로 진입토록 한 점이 이채롭다. 대청 앞문과 웃방 및 건넌방과의 사잇문은 모두 분합문으로 되었다. 사잇문은 팔각(八角)불발기를 넣었는데 아자(亞字) 문양이 특이하고 상하는 외부로 정자살을 넣어 노출시켰다.

집은 높은 2단 축대 위에 가리는 시설없이 축조하였는데 이것은 지체 높은 사대부집이나 연대가 떨어지는 집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계단을 큼지막하게 사랑채 중앙에 놓은 것도 흔치 않은 예이나 이것도 연대가 낮으며 기단도 난석 쌓기로서 원형을 잃었다. 주초(柱礎)는 높은 네모꼴인데 모를 죽인 것도 있다. 네모기둥 위에 납도리를 얹었는데 처마도리만 장혀를 받쳤으며 보방향으로는 단이(받침목)를 끼웠다. 지붕틀은 1고주 5량이며 지붕은 합각지붕으로 처리했다.

안채는 T자형 평면으로 뒤채가 발달한 드문 형태이다. 가로는 7간전퇴로, 세로는 5간맞걸이로 처리해서 복판 맨 앞에는 2간부엌이 놓이고, 뒤로 2간안방, 다음에 웃방을 두었다. 서쪽으로 꺾어져서는 큰대청, 대청앞에 건넌방을 배치하고 동쪽으로 꺾어지면 작은대청, 뒷방, 아랫방의 차례로 구성하였다. 대청과 건넌방 및 작은대청으로부터 아랫방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를 설치했으며 안방의 좌우에도 쪽마루가 있다. 양쪽 대청의 전면은 막지 않고 개방되었으며, 작은대청과 뒷방 사이만 분합문으로 구분되어서 이 집이 주부공간인 안공간이 발달(發達)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평면구성은 경기지방의 사대부집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기단은 큼직한 자연석 한벌대이고 초석은 네모로 얼추 다듬은 덤벙주초이다. 네모기둥 위에 장혀를 받친 납도리를 올렸는데 뒤쪽 처마도리에만 장혀를 생략했다. 대공은 동자주꼴인데 대청 중앙만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지붕틀(가구(架構))은 1고주 5량, 맞걸이 3량인데 대청 중앙만 긴보 5량이다. 보는 단면이 등배를 훑은 달걀꼴로서 민가에서 흔히 이용하는 기법이다. 지붕의 형상은 특히 재미있게 구성해서 서쪽 몸채는 양쪽을 합각지붕으로, 동쪽 뒤채는 우진각으로, 복판 날개는 박공으로 처리했다. 광채는 4간(겹)집 크기인데 근래에 만들어졌다.

사랑채 앞은 여러그루의 관목과 양쪽에 향나무가 심어졌고 사이마당에도 뒷담에 붙여 화단(花壇)이 조성되며 안마당에는 일각문 양옆의 조그만 관목을 제외하고는 별 시설물이 없다. 뒷마당에는 장독대가 놓이고 기타 부엌 살림이 배치되며 뒤꼍에는 감나무들이 심어져서 후원(後園)을 형성한다. 샘은 뒤꼍 동쪽에 만들어졌다. 눈에 띄는 정원시설물은 없지만 공간의 짜임새는 인상적이며 아름답다. 특히 사이마당에는 중문인 일각문을 통해 안마당에 이르고 부엌을 거쳐 뒷마당에 출입하는 공간구성은 일품이다.




사랑채

사랑채 정면

사랑채 서쪽 중문

전경

광채에서 바라본 안채와 안마당

안채와 사랑채를 가르는 담장

사랑채 동쪽 중문

사랑채 앞퇴

안채 뒷마당 창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