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기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오는 이 집은 현재 안채와 별당형식의 안사랑채만이 남아있다. 또한 안채는 18세기 중엽, 안사랑채는 훨씬 뒤인 19세기 중엽에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무성한 팽나무 숲을 뒤로 하고 안채가 자리하며 그 앞쪽으로 안사랑채가 직각으로 위치하는데, 담장을 앞뒤 좌우로 빙 돌려서 딴 공간으로 구분하며 쪽대문을 설치해서 사랑마당과 연결지었다.
안채는 사대부 집에서 흔히 쓰는 ㄷ자형 구조로 부엌·안방·대청을 일직선으로 배열하는 남도방식을 취하고 있다. 양 옆의 날개부분에는 부엌 옆으로 뜰아랫방이, 대청 옆으로 찬방과 윗방·아랫방이 있다. 찬방은 좀 특이한 공간으로 안방 뒤의 골방에 만들기도 하는데 모두 대청에 곁들여 배치되며, 주기능은 음식을 보관하고 분배하는 곳으로 이용된다. 물건을 보관하거나 여름철 안사람의 휴식공간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등 여러 용도로 쓰이는 장소이다.
안방부터 오른쪽 날개부분의 아랫방까지 앞·뒤 모두 툇마루를 놓아 연결이 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양 옆 날개부분의 지붕인데 왼쪽 부분의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고, 오른쪽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좌·우를 대칭시키지 않은 구조가 흥미롭다.
안사랑채는 안에서 사용한 사랑채란 뜻으로, 안채 맞은편에 댓돌만 남아 흔적을 전하는 사랑채와 다르게 돌아 앉은 것이 특이하다. 역시 남도 방식을 보이며 대청·웃방·안방·부엌·모퉁이방이 배열된 一자형 집이다. 모두 툇마루와 쪽마루가 있어 동선이 연결이 된다.
전체적으로 건축장식기법이 우수한 건물이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김선조가옥(永同金善照家屋)이었으나, 현 소유자의 5대 조부 김기현이 예조참판을 지내다 낙향, 가옥을 구입하여 이주한 것을 반영하여, ‘영동 김참판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전문설명
17세기 말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집은 안채와 별당형식의 안사랑채만 남아 있고 앞에 있었다는 사랑채는 건물의 댓돌만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안채는 건축년대가 18세기 중엽, 안사랑채는 훨씬 떨어져서 19세기 중엽 정도의 건물로 추측되며 현존하는 기타 문간채와 곳간채는 더욱 늦은 20세기초에 지어졌다.
무성한 팽나무 숲을 뒤로하고 서남향하여 안채가 자리하며 그 맞은편에 안채와 나란히 사랑채가 있었다고 전하는 바 지금은 댓돌만 남았다. 사랑채 댓돌 남쪽귀를 물고 안사랑채가 직각으로 동남향하여 배치되고 담장을 앞뒤 좌우로 빙돌려서 딴 공간으로 구분되며 동남쪽으로 정원을 만들었다. 서남쪽 모퉁이에 쪽대문을 달아 사랑마당과 연결짓고 북쪽 담장 일부는 쌓지 않아서 폐쇄된 답답한 느낌을 해소한다. 여기 정원은 잘 꾸몄지만 20세기 중반의 왜식(倭式) 아류(亞流)가 전통적 맛을 흐려놓고 있다. 옛 사랑채 터 앞의 사랑마당 남쪽에는 역시 안채와 나란히 문간채가 안사랑채 남서쪽 모퉁이에 물려서 서쪽 담장을 따라 비스듬히 곳간채가 배치되었다.
안채는 사대부집에서 흔히 쓰는 ㄷ자 모양의 평면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완전한 좌우대칭을 취하지 않고 부엌+안방+대청을 일직선으로 배열하는 남도방식을 변형하여 수용하였다. 왼쪽 날개는 앞에서부터 (뜰)아랫방, 다음은 3간부엌인데 쑥 안으로 디밀어 뒷퇴까지 이른다. 꺾어져서 안방, 웃방, 다음은 2간 넓은대청, 끝머리에 앞 뒤 2간차방, 앞으로 꺾어진 오른쪽 날개에 상하 2간 건넌방의 순으로 배치되었다. 앞퇴에는 툇마루를 놓고 건물의 뒤와 동쪽 측면, 건넌방 안쪽에 길다랗게 쪽마루를 놓고 아랫방 안쪽에도 쪽마루를 깔았다.
부엌은 서쪽 측벽 3간을 모두 빈지널벽으로 내달아서 살강을 만들었다. 뒤쪽 2간 상부에는 안방에서 쓸 수 있는 다락을 설치했다. 안방과 웃방 사이에는 개방할 수 있는 미닫이가 시설되고 안방 뒷퇴에는 조그만 골방을 만들어 두었다 골방과 안방 사이는 역시 미닫이이고 웃방과는 여닫이 세살문으로 연결되었다. 대청은 앞의 고주(高柱) 사이에 분합문(分閤門)을 달아서 툇마루와 구분짓고 찬방과의 사이도 뒤쪽간은 분합문으로 연결했다. 그러나 웃방과는 불발기를 달아 구분지었다. 찬방이란 좀 특이한 공간이다. 중부지방의 곱은자집에서는 안방 뒤의 골방에 만들기도 하는데 모두 대청에 곁들여 배치되며 주기능은 큰일을 치를 때 장만한 음식을 보관하고 분배하는 곳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물건의 수장(收藏), 여름철의 안사람의 휴식 등의 여러용도로 쓰이며 이름도 차방, 과방 등으로도 불리운다. 상하 건넌방의 사이에도 개방이 가능한 미닫이로 시설되었다.
구조는 몸채를 2고주5량, 날개를 3량집으로 했는데 단 대청 중앙만은 1고주5량으로 처리되었다. 도리는 모두 굴도리이며 장혀를 받쳤다. 대공은 여러쪽으로 나눠진 사다리꼴 판대공이며 대들보는 면을 접은 네모꼴이다. 기둥 역시 면을 죽인 네모꼴이고 초석은 높은 주초이다. 마루는 작은 2자(53㎝)정도로 높고 댓돌은 화강암 외벌대로 낮다. 지붕은 골기와 합각인데 날개에서 건넌방쪽은 합각지붕으로 하고 부엌쪽은 박공으로 처리했다. 이것은 뜰아랫방 앞으로 다른 건물이 한단 낮게 연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통상 부엌쪽 날개는 박공지붕으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체적으로 의장기법(意匠技法)이 우수한 훌륭한 건물이다.
안사랑채는 안에서 사용한 사랑채란 뜻으로서 사랑채와 다르게 돌아 앉은 것이 특이하다. 평면구성은 남도식으로서 대청이 끝머리(남쪽)로 갔다. 가운데는 웃방과 안방이며 북쪽에 부엌과 모퉁이방을 배치하였다. 동쪽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고 모퉁이방 앞에도 쪽마루가 놓였다. 안방과 웃방사이는 미서기로 구분되고 웃방과 대청 사이에는 분합문을 달았다. 대청의 남쪽 측면과 앞퇴사이에도 분합문을 시설해서 개방할 수 있도록 했다.
구조는 2고주5량이며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다. 갓보 받침목을 두고 네모기둥, 높은주초, 화강암 외벌대 댓돌로 했다. 지붕은 골기와를 얹고 합각으로 처리했다. 깨끗하게 수장했으나 평범한 집이다. 그리고 미닫이 방문의 아자(亞字) 문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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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전경 ![](https://t1.daumcdn.net/cfile/blog/99606C445DF39DA72A)
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688445DF39DA823)
서쪽에서 바라본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B3D5445DF39DA922)
광채 뒷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0FBF445DF39DAA32)
안채에서 바라본 안마당 ![](https://t1.daumcdn.net/cfile/blog/990DC8445DF39DAC2C)
안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E236445DF39DAD2D)
안사랑채 부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