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에 적힌 상량문에 1924년 집의 수리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어 처음 지은 시기는 이보다 앞선 19세기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ㄱ자형의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하고 대각선 맞은편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 배치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평면은 중부의 서해안 지방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데, 음성 지방에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를 지닌다.
안채는 정면의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건넌방이 있고, 왼쪽으로는 윗방 그리고 꺾이면서 안방과 부엌이 배열되어 있다. 건넌방 앞의 툇마루는 내루(內樓)와 같은 멋을 지니기 위해 높게 설치하였다. 주목할 곳은 부엌인데, 연기나 김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까치구멍을 지붕에까지 시설한 것이 특이하다. 사랑채는 앞면이 집 밖으로 향하여 안채에서 보면 사랑채의 뒷면이 보인다. 왼쪽부터 부엌·사랑방·대청이 보이고, 꺾이면서 마루방과 대문간·곳간이 있다.
전체적으로 민가 건축의 소박한 맛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지정 당시 명칭은 음성서정우가옥(陰城徐廷禹家屋)이었으나, 마을 뒷산이 ‘公’자처럼 되어있고 과거 정자와 정자나무가 있어 공산정이 마을로 불린 것을 반영하여 ‘음성 공산정 고가’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전문설명
ㄱ자형 모양의 안채가 정남향(자좌오향(子坐午向))하여 자리하고 대각선으로 맞은 편에 ㄴ자형의 사랑채가 배치되었다. 여기에 잇대어 헛간채가 안마당 앞에 지어져서 전체적으로 튼 ㅁ자집을 이루고 헛간채 동쪽에는 근래에 측간이 만들어졌으며 사랑채 앞은 바깥마당이다.
안채의 상량문(上樑文)에는「단군(壇君) 기원후 4257년 갑자년(甲子年) 7월」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19세기 중반에 최초로 건축되었으나, 상량문에 기록된 1924년에 보수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사랑채도 역사 전면만 있는 一자형 건물이었는데 북쪽 대문간을 연결시켜 ㄱ자형 집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전자는 19세기 후반, 후자는 안채를 보수했던 1924년 전후에 증축되었다고 추정된다. 기타 헛간채 등은 근래에 임시로 구조된 것들이다.
안채는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곱은자 집이다. 가로방향으로 전퇴를 달고 세로방향으로는 후퇴를 달아서 앞으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을 배치하고 꺾어져서 2간대청과 건넌방의 차례로 놓였다. 안방은 간반 크기인데 좌퇴 아래쪽 4반간에는 특이하게 만들어지며 안방과 웃방 좌퇴에는 툇마루가 깔렸다. 부뚜막은 안방과 반 쪼갠 반간에 놓이는데 좌퇴와는 간막이를 해서 여기에 시설된 뒷문과는 공간을 구분하였다. 대청과 건넌방 앞은 툇마루가 놓이며 전면으로 창호시설 없이 개방되었다. 대청과 웃방 및 건넌방 사이 벽은 4분합문(分閤門)으로 구분되었다. 건넌방 머릿퇴에는 부뚜막을 시설하여 굴목공간으로 쓰고 전면 모퇴에는 마루를 깔았는데 툇마루보다 한단 높게 만들어졌다. 아마도 마루 밑에 땔감 등을 두기 위한 수장공간(收藏空間)으로 이용키 위했으리라 생각된다.
지대석은 막돌 허튼층 쌓기로 대략 2단으로 구획되며 주초(柱礎)는 낮은 네모꼴 모양이다. 기둥은 네모이고 납도리집인데 처마도리 밑에만 장혀를 받쳤다. 장혀는 굵기가 좀 가늘고 외사를 새겨 면접이 한 것으로 미루어 나중에 보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지붕틀(가구(架構))은 1고주5량인데 대청 중앙만 긴보 5량이다. 대들보는 항아리 형상이고 대공은 사다리꼴이다. 서까래 길이는 비교적 짧고 단연이 급경사진 것으로 미루어 서까래 이상은 증수시 교체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엌상부 지붕틀에서도 2개의 충량을 걸치고 그 위에 중도리를 겹으로 보내는 기법으로 미루어 연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지붕은 3개의 합각으로 꾸몄으며 합각이 조금 적다. 특히 부엌 상부는 연기가 빠질 수 있도록 까치구멍을 만든 점이 재미있다. 또한 부엌 측(남)벽 화장담은 그런대로 고졸(古拙)한 맛을 준다.
사랑채는 ㄴ자형의 곱은자 집인 바 가로는 전퇴로, 세로는 맞걸이 집으로 구성했다. 평면은 전퇴에 길다랗게 툇마루를 시설하고 서쪽으로부터 사랑부엌, 2간 사랑방, 가운데에 꺾어지면서 상하 2간대청(지금은 구들로 개조됨), 뒤로 대문간, 끝머리에 2간광으로 이루어졌다. 부엌 상부에는 다락과 벽장이 설치되고 부엌 앞퇴에는 실(室)을 만들어서 상보는 공간인 찬방(饌房)을 설정하였다.
지대석은 자연석 바른층쌓기 세벌대이며 주초(柱礎)는 높은 네모꼴이다. 기둥도 네모이고 납도리이며 전면 처마도리 종도리에는 장혀를 받쳤다. 지붕틀은 전면이 1고주5량, 세로면이 맞걸이 3량으로 처리했다. 지붕의 모양은 꺾인 부분의 합각을 두었는데 서쪽과 북쪽 측벽은 박공으로 처리하였다. 특히 서쪽의 박공은 특이한 수법이다. 아마 예전에도 지금처럼 광채나 헛간채가 연결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채 서쪽에 붙은 헛간채는 사랑채와 약간 띄워서 4간전퇴집으로 만들어졌다. 맨 서쪽이 광이고 나머지는 헛간이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민가건축의 소박한 맛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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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754C425DF39F4937)
안채 배면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E9E425DF39F4A06)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A6A5425DF39F4B37)
입구 반대쪽에서 바라본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