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유학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이 향교는 고려시대에 세웠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당시에는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사적 제339호) 근처에 있었으나,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하여 전주성 서쪽 황화대 아래도 옮겼다 한다. 지금 위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관찰사 장만이 옮긴 것이다.
현재 이 향교에는 여러 훌륭한 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7호)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있다. 대성전은 효종 4년(1653)이 고쳐 세웠는데, 이기발이 중건기를 남겼다. 이후 융희 원년(1907)에 군수 이중익이 다시 고쳤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다. 명륜당은 광무 8년(1904)에 군수 권직상이 고쳤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다.
우리의 옛 교육시설을 둘러 볼 수 있는 이곳은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다. 그러나 봄·가을에 공자께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보름에는 향을 피우고 있다.
※(전주향교일원 → 전주향교)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전문설명
이 향교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부터 있었다고 하나 확실한 고증< 考證 >이 없으며 원위치< 原位置 >는 지금의 경기전< 慶基殿 > 근처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朝鮮 > 세종< 世宗 > 23년(1441) 경기전을 짓고 태조< 太祖 >의 영정< 影幀 >을 봉안< 奉安 >하였는데 이웃에 있는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소란하다 하여 부서< 府西 > 화산< 華山 >의 동쪽 기슭으로 옮겼으나 임진< 壬辰 >·정유재란< 丁酉再亂 >을 겪은 후 부중< 府中 >에서 멀어 불편하므로 당시의 관찰사< 觀察使 > 장만< 張晩 >이 현재 위치로 옮긴 것이라 한다. 현재 경내에는 대성전< 大成殿 >·명륜당< 明倫堂 >·계성사< 啓聖祠 >·동무< 東 >·서무< 西 > 등이 있다.
전주향교 전경 동재 서재 대성전 만화루 전주향교전경 대성전 명륜당 서재1 서재2 전경1 전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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