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73호 부여 정암리 와요지

오늘의 쉼터 2008. 2. 22. 17:17



종    목 사적  제373호
명     칭부여정암리와요지(扶餘亭岩里瓦窯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요업/ 도자기가마
수량/면적 62402㎡
지 정 일 1992.05.04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양길면 정암리 47외
시     대백제
소 유 자부여군외54명
관 리 자부여군

일반설명

부여 백마강 건너 야산 남쪽 비탈에 있는 백제 가마터이다.

백제 가마 11기와 고려시대의 가마 1기가 조사되었다. 가마는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고 들어가 만든 지하식 가마이며 천장을 제외하고는 완전하게 남아있다. 출토 유물은 연꽃무늬 수막새, 상자형 전돌, 토기, 각종 기와 등이 있다. 연꽃무늬 와당은 군수리와 동남리에서 나온 와당과 비슷해, 이곳에서 기와를 구워 부여의 주요 건물에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6세기 후반∼7세기전반) 가마터로서 그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백제가마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전문설명


이 유적은 백제시대 사비성이었던 부여에서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백마강변 내동부락(內洞部落) 일원에 분포하고 있다.

이 유적이 학계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87년 7월경 부여지방에 집중적으로 내린 호우로 가마의 천정일부(天井一部)가 노출되면서 비롯되었는데 '88, '90, '91년 3차에 걸친 국립부여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대규모의 백제시대(6세기후반 - 7세기전반) 와요지가 다양한 구조로 완형에 가깝도록 잘 남아있어 백제가마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유적의 중요한 특징을 보면 풍화암반층을 옆으로 파고들어가 구축한 지하식 평요(平窯)와 처음으로 등요(登窯)가 함께 발견되어 등(登) ·평요(平窯)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고, 발굴조사결과 드러난 10여개의 가마는 천장부분을 제외하고는 아궁이, 연소실(燃燒室), 소성실(燒成室), 연도(煙道), 요(窯)앞 회구부(灰丘部)가 완전하게 남아 있어 가마의 전체형태와 구축방법은 물론 세부구조와 축조기술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연화문와당과 상자형전돌 등의 출토유물을 통하여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사원지인 군수리 폐사지(사적 제 44호)와의 수급관계가 밝혀져 관요(官窯)생산체제이었음을 알수 있게 되었고, 정암리 가마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마가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고대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문화교류가 활발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유적의 특성과 출토유물, 주변의 입지조건(백마강변)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서 제작된 제품들이 당시의 도성이었던 사비성(현 부여)을 비롯한 사찰등 건물조성에 주로 쓰여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고, 한편 이 유적 인근에는 백제시대(후기)의 고분 30여기와 산성(테메식)등 백제시대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서 이 유적의 가치는 더욱 더 중요시 되고 있다.




부여 정암리 와요지

부여정암리와요지-유구

부여정암리와요지-유구

부여정암리와요지

부여 정암리 와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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