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천현 궁산에 쌓았던 옛 성이다.
성 북쪽은 한강 쪽으로 경사가 급하고 남쪽은 급하지 않은 경사를 이루고 있다. 산꼭대기 부분을 둘러쌓아 지은 산성으로 기록에 의하면 길이가 약 220m이며 면적은 29370㎡(8900평)라 한다.
성에 관한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옛 문헌에 남아있다. 성벽의 흔적으로 벽을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은 돌인 적심석과 성돌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이 성에 머물다가 한강을 건너가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행주산성(사적 제56호), 파주 오두산성(사적 제351호)과 더불어 옛날부터 한강 강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시설이었던 곳으로 의의가 크다.
전문설명
이 성은 조선시대< 朝鮮時代 > 양천현< 陽川縣 >의 주산< 主山 >인 궁산< 宮山 >에 쌓았던 옛 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 輿地圖書 >, 대동지지< 大東地誌 > 등의 옛 문헌< 文獻 >에 성터< 城址 >에 대한 기록이 보이고 현재에도 해발 74m의 궁산< 宮山 >에 성벽을 쌓았던 흔적으로 적심석< 積心石 >과 성돌이 남아 있다. 원래 이곳은 행주산성 < 幸州山城 >(사적 제 56호) 및 멀리 파주< 坡州 > 오두산성 < 烏頭山城 >(사적 제 351호) 과 더불어 고대< 古代 >로부터 한강 하구< 河口 >를 지키던 중요한 요새지< 要塞地 >였다. 속설< 俗說 >에 의하면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권율< 權慄 > 장군이 이 성에 머물렀다가 한강을 건너가 행주산성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고 전한다. 성 북쪽은 한강쪽으로 급경사인 반면에 남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중턱을 에워싼 테뫼식 산성인데 문헌상에 나타난 성의 길이는 729척< 尺 >이고 지정 면적은 29,370㎡(8,900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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