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75호 광주 신창동 유적

오늘의 쉼터 2008. 2. 22. 17:21



종     목 사적  제375호
명     칭광주 신창동 유적 (光州 新昌洞 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유적분포지/ 유적분포지
수량/면적 38,436㎡
지 정 일 1992.09.09
소 재 지 광주 광산구  신창동 512-1
시     대철기시대
소 유 자국유,사유
관 리 자광산구

일반설명

전라남도 광산군 영산강 유역 낮은 평야지대에 자리한 초기 철기시대의 늪과 못터, 토기가마터, 배수시설, 독무덤(옹관묘) 등 고대 농경문화와 생활유적이 있는 곳이다.

독무덤은 53기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토기와 철기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지역 독무덤은 영산강 유역 삼국시대 독무덤 계보가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가치가 크다.

늪과 못터에서 토기, 목제, 석기 등의 유물이 나왔는데, 특히 빗, 괭이, 나무 뚜껑과 같은 목제유물들은 당시 생활모습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와 함께 불탄쌀, 볍씨, 살구씨와 같이 농경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것들도 발견되었고, 터에서는 토기 제작기술의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움집터에서는 바닥 가운데에 타원형 화덕을 설치하였다.

이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 생활문화연구와 농경생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목제 유물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중요하다.


전문설명


이 유적내에는 초기 철기시대(B.C.2-1세기)의 소택지(沼澤池)와 토기(土器)·구상유구(溝狀遺構)와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의 집자리 유적이 '63년 발굴된 바 있는 옹관묘 유적과 함께 한 권역내에 위치하고 있어 당시의 생활문화 연구의 해명은 물론, 우리나라 선사고고학(先史考古學)의 가장 큰 공백으로 남아 있는 이 시기의 선사문화 복원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당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의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일본 구주지방의 야요이문화의 성립과 관계된 문화교류의 연구에도 많은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소택지(沼澤池)에서 출토된 목제유물 가운데 빗·괭이·나무뚜껑·고배 및 각종 도구 등은 우리나라에서 출토예가 적은 것이며, 당시 생활상을 아는데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자못 그 의의가 크다. 이와 함께 출토된 흑도(黑陶) 고배(高杯) 등 각종 토기류 역시 그 형태상의 특징들은 당시의 토기제작기술이 우수하였음을 보여주었으며, 탄화미와 볍씨의 다량 출토는 당시의 생활수단이 논농사 중심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발굴현장

발굴된유적파편

발굴된유적파편

광주신창동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