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74호 군위 인각사지

오늘의 쉼터 2008. 2. 22. 17:19



종     목 사적  제374호
명     칭군위인각사지(軍威麟角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13,302㎡
지 정 일 1992.05.28
소 재 지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외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인각사
관 리 자

인각사

일반설명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지리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 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 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발굴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 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의 인각사에는 법당과 두 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중요문화재로 인각사 보각국사 탑과 비(보물 제428호)가 있다.


전문설명


이 사지(寺址)는 군위군 산성면 화수(華水)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2.5km 지점인 화산(華山)(해발 760m) 최북단 기슭,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는 위천(渭天)변의 퇴적지에 자리하고 있다.

인각사는 고려(高麗)때에는 전국 굴지(屈指)의 명찰(名刹) 중의 하나로 번성하였으며, 국존(國尊)(국사(國師)) 일연(一然)이 충렬왕 10년(AD 1284)부터 임종할 때까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주석(住錫))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저술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인각사의 창시는 문헌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나 발굴조사에 의하면 대웅전지(大雄殿址)로 추정되는 건물지 기단부(基壇部)에서 통일신라기(統一新羅期)의 유구(遺構)가 확인된 것으로 보아 신라 말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군위 인각사지-2.3기 극란전 전경

군위 인각사지-보각국시비

군위 인각사지-석조 부재

군위 인각사지-5차 청동유물 출토지 주변

군위 인각사지-통일신라 청동 유물 일괄

군위인각사지원경

대웅전,명부전측면

명부전

극락전

3층석탑

부도군

석등

군위인각사지

인각사 전경

인각사지 발굴 출토 석물들1

인각사지 발굴 출토 석물들2

인각사지 발굴 출토 석물들3

인각사지 발굴지1

인각사지 발굴지2

인각사지 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