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69호 석릉(碩陵)

오늘의 쉼터 2008. 2. 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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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사적  제369호
명     칭석릉(碩陵)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려시대
수량/면적 2,498㎡
지 정 일 1992.03.10
소 재 지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강화군

일반설명

고려 희종(재위 1204∼1237)의 무덤이다.

희종은 신종의 첫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이며, 부인은 성평왕후 왕씨이다. 1204년 왕위에 올랐고,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희종 7년(1211)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으로 갔다. 고종 24년(1237) 57세의 나이로 죽자 낙진궁으로 옮겼으며, 10월에 덕정산 남쪽에서 장례를 지내고 석릉이라 하였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무덤을 쌓았는데, 그 뒤 석물도 부서지고 무너진 무덤을 1974년 손질하여 고쳤다. 석릉 주변에는 최근에 고려시대 귀족의 무덤이라 생각되는 돌방무덤(석실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전문설명


이 능은 고려(高麗) 희종(熙宗)(1169∼1237)의 능이다.

희종은 신종(神宗)의 장남으로 이름은 영(영), 자(字)는 불피(不陂), 시호(諡號)는 성효(誠孝)이다. 어머니는 정선태후(靖宣太后) 김씨(金氏)이며 비(妃)는 성평왕후(成平王后) 왕씨(王氏)이다. 희종은 1204년에 즉위하였다. 즉위의 공으로 최충헌(崔忠獻)을 문하시중(門下侍中)·진강군(晋康君) 개국후(開國候)에 봉하였는데 횡포가 심하자 왕은 내시(內侍) 왕준명(王濬明) 등과 함께 그를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을 실패하여 희종 7년(1211)에 폐위되었고, 강화(江華) 교동(喬洞)에 와 있다가 고종 24년(1237) 8월에 승하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이 능의 봉분은 붕괴되어 석조물(石造物)은 파괴되어 없어진 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4년 보수 정화하였다.




강화 석릉 전경

강화 석릉 전경

문인석

문인석

표석

석부재

석릉전경

강화 석릉 비석

강화 석릉 원경

강화 석릉 전경

강화 석릉 후경

고분석실외부모습

문인석(고분석실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