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내를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 서북쪽 기슭의 동쪽 비탈진 곳에 분포하고 있다.
107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106기는 흙을 판 후 무덤을 쓴 널무덤(토광묘)이고, 1기는 널방과 널길을 가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널무덤은 야산 전체에 걸쳐 분포하며, 봉분은 거의 깎여 나가 남아있지 않다. 출토 유물로는 여러가지 토기류·옥과 같은 장신구류·철로 만든 칼이나 도끼같은 무기류·말갖춤(마구류)과 그 밖의 숟가락 등이 나왔다. 90-1호 널무덤에서는 갑옷이 출토되어 백제철갑의 실물을 볼 수 있어 주목되고 있다.
신봉동 고분군은 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동안 만들어진 고분군으로, 대체로 4∼5세기경의 백제 고분군이라 할 수 있다.
신봉동은 백제의 동쪽 변방지역으로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마구류·무기류가 많이 출토되어,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돌방무덤은 서울지역의 백제 초의 것과 공주지역의 돌방무덤과 비교되는 자료로서 평가된다.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 → 청주 신봉동 고분군)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전문설명
[위치·분포(位置·分布)] 고분군(古墳群)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 신봉동(新鳳洞) 산(山)7-1 일대(一帶)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며 이 지대(地帶)는 청주시내(淸州市內)를 남동(南東)에서 북서(北西)쪽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무심천(無心川)의 서북(西北)쪽 야산(野山)이고 고분군(古墳群)은 이 야산(野山)의 표고(標高) 103.8m 지점(地點)에서 동(東)쪽으로 비탈진 곳에 분포(分布)하고 있다.
[구조형식(構造形式)] 이 고분군(古墳群)에서 조사(調査)된 고분(古墳)은 모두 107기(基)인데 그 중 토광묘(土壙墓)는 106기(基)(82년도 14기, 90년도 92기)이고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은 1기(基)(82년도)이다. 토광묘(土壙墓)의 구조(構造)에 있어 분구(墳丘)는 거의 모두가 유실(流失)되어 간신히 분구기저부(墳丘基底部) 윤곽(輪廓)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편평(扁平)하게 되었거나 또는 현지표(現地表) 위로 약간 도드라져 있을 정도이며 묘광(墓壙)은 경사면(傾斜面)을 가로질러 수직(垂直)으로 파서 평면(平面)이 장방형(長方形)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구조형식(構造形式)의 토광묘(土壙墓) 중 유존상태(遺存狀態)가 양호(良好)한 것 몇 기(基)를 살펴보면 82-1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이 장방형토광(長方形土壙)의 한쪽 단벽(短壁)에 원형토광(圓形土壙)이 달린 특이(特異)한 형식(形式)의 것으로서 황갈색(黃褐色) 연질토기편(軟質土器片)이 원형토광(原形土壙)에서 드러나고 또 장방형토광(長方形土壙)보다 약간 깊은 점(點)으로 미루어 원형토광(圓形土壙)은 부장품광(副葬品壙)으로 보게 되며 이러한 구조(構造)의 묘광(墓壙) 어깨선 윗부분(部分) 전면(全面)에 돌을 덮었다. 묘광(墓壙)의 남북 길이 3.50m, 동서 너비 1m, 깊이 약 70∼80cm이다. 82-3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장축(長軸)을 남북(南北)으로 둔 장방형(長方形)이고 지형상 영향인지 서벽(西壁)이 동벽(東壁)보다 높으며 묘광(墓壙)의 크기는 길이 2.60m, 너비 80cm, 표토하(表土下) 깊이는 서(西)쪽이 70cm·동(東)쪽이 30cm이다. 이 토광묘(土壙墓)에서는 토기(土器)와 함께 마구류(馬具類)가 드러났다.
82-7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장축(長軸)을 남북(南北)으로 둔 장방형(長方形)이고 바닥은 남(南)쪽 반(半)이 북(北)쪽보다 약간 높다. 크기는 길이 3.05m, 너비 1.55m, 깊이는 어깨선에서 동(東)쪽 10cm, 서(西)쪽 40cm이다. 82-14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다란 장방형(長方形)이고 크기는 길이 3.60m, 너비 1.80m, 깊이 약 1m이다. 90-4호분(號墳)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은 장축(長軸)을 남북(南北)으로 둔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이고 네 벽(壁)은 어깨선부터 10∼30CM까지는 적갈색(赤褐色)·황갈색사질토(黃褐色砂質土), 그 아랫부분은 석비례층을 파고 들어갔다. 바닥은 석비례 위에 고운 마사토를 10∼13cm 두께로 깐 다음 황갈색진흙을 5∼8cm 두께로 깔았고 남(南)쪽 부분(部分)에서는 목관(木棺)을 썼던 흔적이 보였다. 묘광(墓壙)의 크기는 길이 2.70m, 너비 1.16m, 깊이 0.58∼1.10m이다. 90-1호분(號墳)(B지구(地區))은 묘광(墓壙)의 평면(平面)이 장축(長軸)을 동서(東西)로 둔 장방형(長方形)이고 풍화(風化)된 화강암반층(花崗岩盤層)을 수직(垂直)으로 파내려가다가 바닥으로 이어진다. 바닥에는 황갈색 찰흙을 깔고 냇 자갈돌을 한두벌 깔았으며 중앙부에는 목관(木棺)을 안치(安置)하고 네 벽(壁)과 목관(木棺) 사이에는 황갈색 흙을 채웠다. 이 토광묘(土壙墓)는 신봉동(新鳳洞)의 조사고분(調査古墳) 중 가장 큰 규모의 것으로서 어깨선의 길이 3.70m, 너비 1.80m, 깊이 0.50∼1.10m이다. 특히 이 토광묘(土壙墓)에서는 갑옷이 드러나 백제철갑(百濟鐵甲)의 실례(實例)에 접(接)하게 되어 주목(注目)된다.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인 82-1호분(號墳)은 동서(東西)로 약간 긴 구형(矩形)의 현실(玄室)과 현실남벽(玄室南壁)의 동(東)쪽에 치우쳐 달린 선도(羨道)로 이루어졌고 현실(玄室) 네 벽(壁)은 포갠돌을 수직(垂直)으로 쌓아 구축(構築)하였으며 천정부(天井部)는 파괴(破壞)되어 가구형식(架構形式)은 알 수 없다. 막돌을 깐 현실(玄室) 바닥에는 서벽(西壁)에 치우쳐 장방형(長方形)의 관대(棺臺)가 마련되었는데 포갠돌로 26cm∼30cm 높이로 쌓고 윗면에는 냇자갈을 깔고서 모래와 황토를 섞어 다짐을 하였다. 현실(玄室)의 크기는 동서(東西) 3.52m·남북(南北) 3.48m, 선도(羨道)는 현존 길이 85cm·너비 80cm, 관대(棺臺)는 남북(南北) 길이 2.50m·동서(東西) 너비 90∼95cm이다. 그리고 조사고분(調査古墳) 중 유일(唯一)한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다.
[출토유물(出土遺物)] 유물(遺物)은 재질(材質)·용도별(用途別)로 나누어 놓으면 다음과 같다. 토기(土器)…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단경광구호(短頸廣口壺)·장경광구호(長頸廣口壺)·평저연질단경소호(平底軟質短頸小壺)·평저화분형토기(平底花盆形土器)·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병형토기(甁形土器)·완형토기(완形土器)·유개배(有蓋杯)·파수부배(把手附杯)·삼족부배(三足附杯) 등장신구류(裝身具類)…금동지환(金銅指環)·토제소옥(土製小玉)·마노소옥(瑪瑙小玉)·소옥(小玉)·동이식(銅耳飾)무기류(武器類)…철제대도(鐵製大刀)·철제삼엽환두대도(鐵製三葉環頭大刀)·철도자(鐵刀子)·철족(鐵鏃)·철모(鐵모)·철부(鐵斧)·철착(鐵鑿)·철겸(鐵鎌)·갑옷 등 마구류(馬具類)…말재갈·목심철판피등자(木心鐵板被등子)·안장복륜잔혈(鞍裝覆輪殘穴)·교구(교具)·철환(鐵環) 등기타(其他)…쇠낚시·청동(靑銅)숟가락·철정(鐵釘)·꺽쇠 등
[추정연대(推定年代)] 신봉동고분군(新鳳洞古墳群)은 어떤 한 시기(時期)에 축조형성(築造形成)된 것이 아니라 상당(相當)한 기간(期間) 동안 영조(營造)된 고분군(古墳群)임으로 대체(大體)로 이른 시기(時期)의 고분(古墳)은 4세기초(4世紀初)까지 축조연대(築造年代)의 상한(上限)을 올려볼 수 있고 그 하한(下限)은 5세기중엽(5世紀中葉)을 전후(前後)한 시기(時期)로 보고 있다.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 발굴후토광묘노출상태 철제유물(소환두대도,철부,낫,손칼,살촉)토광묘13호 재갈(토광묘13호) 양이완(토광묘53호) 파수부완(토광묘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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