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45년에 지은 건물이다.
1906년 베르모레르 신부가 감독과 설계를 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동원해 지었다. 당시에는 목조건축으로 앞면 5칸·옆면 13칸이었는데, 1916년 건물을 고치면서 일부분을 벽돌로 바꿨으며, 그 뒤 다시 2차례 수리를 하였다. 2층 건물과 비슷하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에 천장은 판자로 처리했고 바닥에 널판지를 깔았다.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지은 건물이며 한국전통양식과 서양양식이 합쳐진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베르모레르 신부와 김대건 신부의 기념비가 있다.
문화재 명칭은 화산천주교회 → 익산 나바위성당으로 변경 되었다. (2012.10.15 고시)
전문설명
이 성당은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중국에서 조선 헌종(憲宗) 11년 1845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주교, 다블뤼신부와 함께 황산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6년 봄에 착공하여 아마도 같은 해에 준공을 본 목조건물이었다. 그후 1916년 종각을 덧붙여 건립하면서 목조벽체를 헐고 벽돌벽으로 개조하였는데 이 지방 벽돌로 중국인들이 쌓았다고 한다. 1922년에는 요셉 까다르(Josepus Cadars) 신부가 바깥기둥 밑부분을 돌기둥(石柱)으로 바꾸었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네이브와 아일없이 중앙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들을 세워 보를 받치는데, 본래에는 이 기둥들에 간막이를 두어 남녀 신도석을 구분하였다고 한다. 바닥은 장마루이고 천장은 판자로 마감하였다. 제대가 있는 곳은 반원아취(Rounded arch)로 천장을 받치고 있다. 정면은 잘 다듬은 석재로 기초부를 이루고, 그 위에 벽돌쌓기의 종탑부를 두었다. 종탑부의 모서리는 후렛버트레스(Flat buttress)가 직교되게 하였다. 본당의 지붕은 합각을 형성한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얹었고, 지붕 아래에는 팔각 채광창을 두었는데 이는 분명 팔괘의 상징이라 생각된다. 특히 양측면에는 개방된 회랑이 있는데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 연등천장을 이루어 도리, 보와 더불어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성당은 천주교가 이 땅에 정착하면서 서양식성당건축을 짓지 않고, 한국 전통적인 목조건축과 조화되도록 한양절충양식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가진다.
익산 나바위성당 전경 익산 나바위성당 측면 측면세부 현관부 성당 측면 전경 전경 전경 전경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