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67호 서울 암사동 유적

오늘의 쉼터 2008. 2. 21. 08:00


 

종     목 사적  제267호
명     칭서울 암사동 유적 (서울 岩寺洞 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지/ 주거지
수량/면적 82,362.65㎡
지 정 일 1979.07.26
소 재 지 서울 강동구  암사동 155
시     대석기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강동구

일반설명

아차산성을 마주하는 한강변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방사선탄소측정에 따르면 B·C 4,000∼3,000년기에 걸친 유적이다. 20여 기의 집터와 딸린시설, 돌무지시설이 드러났다. 집터는 바닥을 둥글거나 모서리를 죽인 네모꼴로 팠으며 크기는 길이 5∼6m, 깊이 70∼100㎝ 정도이다. 집터 가운데에 돌을 두른 화덕자리도 보이며, 입구는 주로 남쪽을 향한다. 기둥구멍은 보통 4개이며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으며 돌도끼,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등이 출토되었다.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이며,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중 최대의 마을단위 유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당시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전문설명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江東區 岩寺洞)은 한강과 아차산성을 강건너로 바라보는 왼쪽 대지위에 자리한다. 유적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25년에 내린 큰 비로 한강이 넘쳐 유적이 잘려나가 토기, 석기 등 유물이 많이 나타나게 되면서부터이다.

발굴은 1967년에 한국대학박물관협회의 연합 발굴이 있은 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네차례에 걸쳐 조사하였고, 1984년 선사유적 공원을 만들기 위한 집자리 복원 자료를 얻기 위해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다시 발굴한 바 있다.

드러난 유물, 유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중서부 지방 신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두 20여채의 신석기시대 움집터와 딸린 시설, 돌무지 구조 등이 드러났고, 여러 가지 무늬 질그릇, 석기 등이 발굴되었다. 움집형식의 둥근집이 많으며 모를 죽인 네모꼴도 있다.

크기는 한쪽 길이가 5∼6m쯤이고, 깊이는 70∼100cm쯤 된다. 집자리 가운데에 돌을 둘러놓은 불땐 집자리가 있고, 나들이(입구)는 남쪽에 있는 것이 많다. 기둥구멍은 집 한채에 네 개가 있어 네 모서리에 기둥을 곧게 세우고 도리를 얹고서 서까래를 서로 기대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질그릇은 계란을 반쪽 갈라 놓은 모습의 뾰족밑, 둥근밑 모양으로 질그릇의 입술, 몸체, 밑 부분으로 나누어 무늬를 새겼는데 입술에는 짧은 빗금무늬, 점무늬, 사내끼무늬를 새기고, 몸체에는 물고기 등뼈무늬를 주로 베풀었다. 무늬가 없는 납작밑 질그릇도 더러 나왔다. 무늬 새긴 부분에 따라, 이른 시기에는 질그릇 전체에 새긴 것이 많고, 늦은 시기로 오면서 입술 부분에만 무늬를 새긴 것이 늘어난다.

석기는 주로 강자갈로 만든 도끼와 화살촉, 그물추 등 뗀석기가 많았고, 간석기도 있다. 농사에 쓰이는 괭이, 돌낫, 보습과 갈돌, 갈돌판도 있어 암사동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도토리와 같은 자연열매를 따다 음식을 만들어 먹은 자취도 남아있다.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로부터 늦은 시기에 걸치며, 연대는 대체로 7,000년부터 3,000년전으로 볼 수 있고, 방사성탄소 측정에 따르면 6,400년부터 3,500년전에 걸쳐있다.




주거지노출상태

암사동복원움집

암사동선사주거지

기념관

암사동복원움집 내부

암사동복원움집1

암사동복원움집2

암사동복원움집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