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64호 단양 온달산성

오늘의 쉼터 2008. 2. 21. 07:31



종    목 사적  제264호
명     칭단양온달산성(丹陽溫達山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26,354㎡
지 정 일 1979.07.26
소 재 지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67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단양군

일반설명

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성벽의 보존 상태가 좋아, 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전문설명


남한강(南漢江)의 남안(南岸)에 해당되는 영춘면(永春面) 하리(下里)와 백자리(栢子里) 사이의 해발 427m 성산위에 축조된 석축(石築)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조선전기(朝鮮前期)에는 이미 고성(古城)이 되어 있었음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내용으로 알 수 있는데 성산고성(城山古城)이라 하여 「석축주일천오백이십삼척고십일척내유- 정금반퇴이(石築周一千五百二十三尺高十一尺內有- 井今半頹 )」라 하였다.

성산(城山)은 영춘(永春)의 진산(鎭山)으로 산하(山下)에는 석회암동굴(石灰岩洞窟)이 있어 옛부터 온달굴(溫達窟)이라 하고, 성산(城山)의 고성(古城)은 조선후기(朝鮮後期)에 이르러 온달설화(溫達說話)와 결부되기 시작해 「고노상전(古老相傳)」이라 전해져 어느듯 성(城)의 이름도 온달산성(溫達山城)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남한강의 최상류방면으로 소백산맥을 넘는 베틀재와 관적령(串赤嶺)을 지킨 요새로 여겨지고 있다.

산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비탈진 약간의 평지를 에워싼 성벽은 납짝한 석회암(石灰巖)과 사암(砂巖)으로 쌓았고, 상하(上下)의 성석(城石)에 크기차이가 없는 내외협축(內外夾築)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은 남·동·북벽의 경우 높이 7.8m에 이르며, 남·동·북문터가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남문터와 동문터는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락문형식이며 바깥에서 바라본 입면(立面)이 凹형(形)이고 개구부(開口部)가 잘 남아 있다. 문 밖에는 축대를 이중(二重)으로 쌓아 올렸던 흔적이 남아있다. 북문터는 한때 사용하다가 메워버린 흔적이 있다. 북쪽 성벽은 약 35m 구간이 사암(砂巖)으로 쌓여졌을 뿐만 아니라, 성벽 아랫부분의 바깥으로 호석(護石)처럼 보축(補築)한 것이 있어서 축조기법(築造技法)이 다르다. 또 이 부분에는 성벽의 중간을 뚫고 나가는 형식이 수구(水口)가 남아있는 바, 그 출수구(出水口)는 높이 65cm이고 아랫너비 37cm·윗너비 25cm의 사다리꼴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 수구(水口)와 북문(北門)의 사이는 모서리부분에 길이 6.3m이고 폭이 5.5∼5.8m인 긴네모꼴의 치(雉)가 설치(設置)되어 있어 수(水口·門·雉)의 형식에 있어 우리나라 고대산성(古代山城)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성안에는 500여평의 평지와 계단식의 대지가 있으나 건물의 흔적은 지표에 남아있지 않으며, 우물의 흔적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쪽으로 영춘에서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을 바로 아래에 내려다보는 전망이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다.

이 성터는 온달동굴과 부근의 여러 가지 전설이 얽힌 지명(地名)과 함께 고구려(高句麗) 온달(溫達)과 관계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축성기법(築城技法)에 있어서는 6세기(世紀)쯤 신라(新羅)의 축성방법(築城方法)에 해당되기 때문에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歷史)를 해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양온달산성전경

단양온달산성전경

단양온달산성성벽

단양온달산성성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