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42호 장성 필암서원

오늘의 쉼터 2008. 2. 20. 21:25


 

종    목 사적  제242호
명     칭장성 필암서원 (長城 筆巖書院)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수량/면적 5,831㎡
지 정 일 1975.04.23
소 재 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필암서원
관 리 자장성군

일반설명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전문설명


이 서원< 書院 >은 조선< 朝鮮 > 중종< 中宗 > 35년(1540)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弘文館 > 부수찬< 副修撰 >을 지낸 하서< 河西 > 김인후< 金麟厚 >(1510∼1560) 선생< 先生 >을 주향< 主享 >으로 모시고 고암< 鼓巖 > 양자징< 梁子徵 >(1523∼1594)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선조< 宣祖 > 23년(1590) 김인후 선생의 고리< 故里 >에 세워졌다가 병화< 兵禍 >로 소실< 燒失 >된 후 인조< 仁祖 > 2년(1624)에 재건되었으며, 현종< 顯宗 > 3년(1662)에 사액< 賜額 >되고 현종 13년(1672)에 현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우암< 尤庵 > 송시열< 宋時烈 > 선생이 쓴 판액< 板額 >이 걸린 확연루< 廓然樓 >를 들어서면 강당< 講堂 >인 청절당< 淸節堂 >이 있는데, 여기에 윤봉구< 尹鳳九 > 선생이 쓴 '필암서원< 筆巖書院 >'이란 편액< 扁額 >이 달려 있다. 강당 뒤편에는 송준길 선생이 쓴 편액이 걸려 있는 동< 東 >·서< 西齋 >가 있고, 서재 옆에는 인종< 仁宗 >의 어필묵죽< 御筆墨竹 >을 소장하고 있는 경장각< 經藏閣 >이 있다. 사당 북측 벽에는 김인후 선생을, 동측 벽에는 양자징 선생을 향사하고 있다. 또한 서원 동북측 담장 밖에 있는 장판각< 藏板閣 >은 『하서집< 河西集 >』의 목판< 木板 >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노비보< 奴婢譜 >, 원장선생안< 院長先生案 >, 집강안< 執綱案 >, 문계안< 文契案 > 2건, 서재< 西齋 > 유안서< 儒案書 >, 원적< 原籍 > 4건, 봉심록< 奉審錄 > 양자징명< 梁子徵名 > 축관계< 祝關系 > 품목 < 稟目 > 등이 일괄로 보물 제587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밖에도 하서유묵< 河西遺墨 > 등 60여 건의 중요한 서책이 보관되어 있다.




필암서원

필암서원확연루

필암서원청절당

우동사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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