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41호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오늘의 쉼터 2008. 2. 20. 21:21



종     목 사적  제241호
명     칭월성화산리회유토기요지(月城花山里灰釉土器窯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요업/ 토기가마
수량/면적 10,800㎡
지 정 일 1974.12.14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 942-1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사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요지란 자기나 기와, 토기를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신라시대 토기를 구워내던 곳으로 그 당시의 가마가 있던 자리이다. 주위의 밭에는 토기 조각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 일대의 밭에서 발견되는 토기조각들은 가마에서 실패한 조각들로서 찌그러지거나 서로 붙은 것이 많으며, 가마벽 조각들은 굳은 점토질로 되어있다.

발견되는 토기들은 대부분 7∼8세기로 짐작되는 꽃무늬를 찍은 토기들이며, 이중 약 20%가 회색유약이 발라져 있어 주목된다. 발견된 토기의 모양은 술잔, 사발, 병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대형의 항아리와 뚜껑이 있고 넓적한 작은 그릇인 합모양의 조각들도 발견된다. 토기에 찍은 꽃무늬의 종류도 다양하며, 인근 지역에서도 꽃무늬를 찍은 인화문토기 가마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기에 경주지역에 사용된 토기들이 주로 이 지역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토된 토기 조각들은 7∼8세기 통일신라 토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며, 특히 화산리 가마터에서 발견되는 회색유약을 바른 토기는 그 전에 자연적인 유약을 바른 것보다 발전한 것으로 토기를 만드는 기술이 우수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회색유약을 바르는 것이 바탕이 되어 청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회색유약을 바른 토기의 발견은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기술 발전의 중요한 단계를 증명하는 것으로 의의가 크다.


전문설명


요지는 화산리 마을에서 서북편의 작은 소나무밭이 있는 남향한 산기슭에 위치한다. 주위의 밭에 토기편과 요벽편들이 4개소에 산포되어 있는데, 밭을 갈 때 지하에서 다량의 토기편들이 나온다. 밭은 약 2∼3°로 경사가 져있어 가마의 유구는 산기슭과 밭에 걸쳐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의 밭에서 수습된 토기편들은 고화도의 번조 때문에 찌그러지거나 서로 엉켜붙은 것이 많으며, 가마 벽편들은 완전 환원번조된 굳은 점토질이어서 발굴하면 보존상태가 양호한 가마가 발견될 것으로 믿어진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토기들은 대부분 7∼8세기로 추정되는 인화문토기류<印花文土器類>들이며, 이중에 약 20% 가량에 회유<灰釉>가 시유되어 있어 크게 주목된다. 토기의 기형에는 고배·완·발·배<杯>·광구병·장경호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대형의 항아리와 합<盒>모양의 파편도 출토된다. 토기에 베풀어진 인화문의 문양종류도 매우 다양하며 수십종에 이른다.

화산리의 인근 지역인 동산리<東山里>·화곡리<花谷里>·망성리<望星里> 등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인화문토기 요지들이 발견되고 있어 화산리 요지를 포함한 이 지역이 통일신라 전기에 경주지역에 사용된 토기들의 주요 공급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들 요지에서 출토된 토기편들은 7∼8세기 통일신라토기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화산리 요지에서 출토되는 회유토기의 존재는 앞 시기의 고화도 경질토기에 나타나는 자연유를 한단계 발전시켜 인공으로 시유한 것으로, 연유도기<鉛釉陶器>의 존재와 함께 이무렵에 이미 시유기법을 알고 있었을 정도로 토기 제작기술이 우수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이 회유기법이 바탕이 되어 곧이어 청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 회유토기의 존재는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기술 발전의 중요한 단계를 증명하는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전경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전경

출토된유물(토기류,기와파편)

요지주변수집토기편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안내문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전경1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전경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