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초장이란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키는 60∼200㎝에 이르며 완초, 용수초, 현완, 석룡초라고도 한다.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 합 등이 있다.
왕골이 신라시대에 이미 사용되었음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때에는 사직신(社稷神)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으며,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중국에 보내는 증여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귀한 제품으로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사용하였고,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쓰였다.
현존하는 왕골제품을 통해 본 제작기법으로는 도구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고드랫돌에 맨 두 가닥 실을 자리틀에 걸고 자리알을 두가닥 실로 엮는 노경소직(露經疏織:날줄이 겉으로 들어나 보이며 성글게 짜여진 기법)의 자리와 방석이 있으며 또 하나는 돗틀에 씨실을 촘촘히 걸어 긴 대바늘에 꿴 자리알을 넣으면서 바디로 눌러 다져서 짜는 은경밀직(隱經密織:날줄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으면서 촘촘히 짜여진 기법)의 돗방석과 돗자리가 있다. 손으로 엮는 방법으로는 왕골 4날을 반으로 접어 총 8개의 날줄을 정(井)자형으로 엮은 후 두 개의 씨줄을 엮어 만드는 8각, 원형의 방석이 있고, 삼합, 송동이(작은 바구니) 등도 모두 이 기법을 이용하여 만든다.
왕골제품은 역사가 오랜 생활문화유산으로, 한때 단절위기도 있었지만 1970년 이후 그 제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왕골제품은 깔 것과 용기에 불과하였으나, 염색과 굵기의 조절이 용이하며 특별한 도구 없이도 다양한 기물을 창작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므로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전문설명 완초장이란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키는 60∼200㎝에 이르며 완초, 용수초(龍鬚草), 현완(懸莞), 석룡추(石龍芻)라고도 한다.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 합 등이 있다.
왕골은 신라 때 이미 사용되었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사직신(社稷神)인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으며, 왕실에서는 문석(文席), 채석(彩席), 화문대석(花文大席)을 사용하였고, 중국에 보내는 증여품으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에 관청에서 수요를 빙자하여 민간에게 공납을 강요하는 몇가지 품목중에 왕골도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에도 왕골은 매우 귀물(貴物)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만화석(滿花席), 만화방석(滿花方席), 만화각색석(滿花各色席), 용문석(龍文席), 화문석(花文席), 잡채화문석(雜彩花文席), 채화석(彩花席) 등 여러명칭의 왕골제품이 있어 궁중 및 상류계층에서 사용하였고 또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쓰였다.
현존하는 왕골제품을 통해 본 제작기법으로는 도구를 이용하는 두가지 방법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 중 한가지는 고드랫돌에 맨 두가닥 실을 자리틀에 걸고 자리알을 두가닥 실로 엮는 노경소직(露經疏織:날줄이 겉으로 들어나 보이며 성글게 짜여진 기법)의 자리(席)와 방석(方席)이 있으며 또 하나는 돗틀에 씨실을 촘촘히 걸어 긴 대바늘에 꿴 자리알을 넣으면서 바디로 눌러 다져서 짜는 은경밀직((隱經密織):날줄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으면서 촘촘히 짜여진 기법)의 돗방석과 돗자리가 있다.
손으로 엮는 방법으로는 왕골 4날을 반으로 접어 정(井)자형으로 총 8개의 날줄을 엮은 후 두 개의 씨줄로 엮어 만드는 8각, 원형의 방석이 있으며 삼합, 송동이(작은 바구니) 등도 모두 이 기법을 이용하여 만든다.
자리틀에 걸어 노경소직의 방법으로 엮는 자리는 강화도의 특산물로서 1991년 12월 31일 조사에 의하면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1,847호가 종사하여 20,456매를 생산하였다. 돗틀에 걸어 은경밀직으로 짜는 자리는 원래 강화의 교동이 주산지였으나 약 50여년 전부터 그 명맥이 완전히 끊어졌으며 지금은 전남 보성군 조성면 축내리에서 특용작물로 용무늬를 넣은 용문석을 생산하고 있는데, 1990년 조사에 따르면 연간 1,500매를 생산한다고 한다.
손으로 엮는 왕골은 화방석과 꽃삼합, 송동이가 대표적인 제품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일대에서 부업으로 제조하고 있다. 1991년 12월 31일 조사에 의하면 609호가 종사하여 20,624매의 꽃방석을 생산하였고, 206호가 종사하는 꽃삼합은 연간 30,371매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강화에는 2,3년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중소공장에 취업하느라 왕골부업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왕골제품은 그 역사가 오랜 생활 문화유산으로서 한때 단절위기도 있었으나 1970년 이후 그 제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왕골제품은 깔것과 용기에 불과하였으나 왕골은 염색과 굵기의 조절이 용이하며 특별한 도구 없이도 다양한 기물을 창작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므로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이용해 완상품(玩賞品), 실내장식용품, 신변용품, 장신구 등 여러 용도로 개발의 여지가 풍부한 공예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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