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장은 놋쇠로 각종 기물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신라시대에는 유기를 만드는 국가의 전문기관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더욱 발달하여 얇고 광택이 아름다운 유기를 만들었다. 조선 전기에 기술이 퇴화한 듯하였으나 18세기에 이르러 다시 성행하여 사대부 귀족들이 안성에다 유기를 주문생산케하여 안성유기가 발전하였다.
유기는 대표적인 구리합금 금속으로서 각 성분비율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구리와 주석을 7:3으로 합금하여 만든 놋그릇을 방짜유기라 하고 구리와 아연을 합금하여 만든 그릇을 황동유기라 하는데 두 종류는 노르스름한 빛깔에 은은한 광택이 난다. 구리에다 니켈을 합금한 것은 백동유기라 하며 흰 빛을 띤다.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 등이 있다. 가장 질이 좋은 유기로 알려진 방짜유기는 일명 양반쇠라고도 하는데, 북한의 납청유기가 가장 유명하다. 방짜유기는 녹인 쇳물로 바둑알 같이 둥근 놋쇠덩어리를 만든 후 여러 명이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로 만든다. 방짜로는 징이나 꽹과리, 식기, 놋대야 등을 만들 수 있다. 주물유기는 일명 ‘퉁쇠’라 부르는데 제작방법이 방짜에 비해 쉽기 때문에 각지에서 제작되며 안성유기가 가장 유명하다. 안성의 맞춤유기는 ‘안성맞춤’이란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하게 되어 수요가 늘자 일일이 두드려 만드는 방짜기법 대신에 쇳물을 형태에 부어 그릇을 만드는 주물기법으로 만들게 되었다. 반방짜유기는 절반은 주물로 만들고, 절반은 방짜기법으로 만드는 것으로 전남 순천에서 성행하였다.
유기장은 전통적인 금속공예기술로서 지역별로 독특한 양상으로 발전하였고 실용성이 높은 고유의 공예품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김근수(주물), 이봉주(방짜), 한상춘(반방짜) 씨 등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전문설명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는 멀리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부터 시작되었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도 유전(鍮典)이란 것이 있었는데 국가에서 유기를 전담하는 기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유기 제작기술은 매우 발달하여 얇고 정교한 유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朝鮮時代) 초기(初期)에는 유기 제작기술이 퇴화한 듯하였으나 말기(末期)부터 안성(安城)유기가 유명해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기 제작기법은 납청(納淸)의 방짜유기와 순천(順天)의 반방짜와 안성(安城)의 주물유기가 있다. 안성의 주물(鑄物)유기는 제작기교가 매우 발달되어 기형이 아름답고 정교하며, 합금(合金)이 우수하여 '안성마춤'이란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다.
현재 안성유기의 제작기법을 전통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김근수(金根洙) 씨로서 당국에서는 1983년 6월에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77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유기장(쇳물붓기) 갯토로틀만들기 끄름질 담금질 닥팀망치질 가질질 유기장 방짜반상기 놋쇠제기 네핌메질 달군질 우개리질 방자유기반상기 방자유기벼름질제작 부칠간에서향남틀을해체하여주물만들기 유기장(쇳물붓기) 닥팀질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