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장(彩箱匠)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을 들여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로 고리 등을 엮는 기능 또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언제부터 채상장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채상은 고대 이래로 궁중과 귀족계층의 여성가구로서 애용되었고, 귀하게 여겨졌던 고급공예품의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사대부 뿐만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유행하였으며, 주로 옷·장신구·침선구·귀중품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다.
채상의 제작기술은 대나무 껍질을 균등하게 떠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대나무껍질을 입으로 물어 얇게 떠낸 다음, 떠낸 대나무 껍질을 물에 불린 후 그것을 무릎에 대고 일일이 다듬어 정리한다. 염색을 하고 나서 1∼5가닥씩 엇갈려 가며 엮는다. 모서리와 테두리에 남색이나 검정색 등 바탕무늬와 어울리는 비단으로 감싸면 완성된다. 채상의 무늬는 완자·수복강녕·십자·번개·줄무늬 등 주로 길복(吉福)을 추구하는 길상적인 무늬이다.
채상장은 근대 이후 플라스틱 제품이 범람하면서 단절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전통 민속공예로서 그 가치가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게 되었다. 기능보유자로 서한규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설명 죽세품(竹細品)을 짜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채상장이라 한다.
채상(彩箱)의 역사가 오래이나 어느 때부터 사용되어왔던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서유구(徐有구)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나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담양지방의 채상(彩箱) 또는 채상(綵箱)이 국내에 이름 있다고 하여 주목하고 있으므로 죽(竹)의 주생산지인 영호 양남에서 전승되어왔던 죽세공(竹細工) 가운데서도 비단결같이 곱고 보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쓰임새가 긴한 죽세공의 한 부문으로 생각된다.
채상은 죽(竹)을 종이처럼 얇고 가늘게 다스려서 거기에 청(靑), 홍(紅) 등 각색 물감으로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겉을 짜거나 아니면 겉대와 속대의 색상이 다름을 이용하여 염색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짜서 무늬가 은은히 비치게 하는 두 가지 기법이 있다. 이렇듯 정교 미려한 것을 겉으로 하고 속에는 역시 겉보다 굵은 대로 엮은 것을 받쳐서 겉과 속을 부합한 구연부(口緣部)에 넓은 대쪽으로 대테를 두르고 겉테와 안테를 칡이나 소나무뿌리로 잡아매기 위하여 매끼질을 하고 헝겊이나 가죽으로 테를 입혀 이를 동이라 한다. 상자의 모서리인 귀에 종이나 가죽으로 귀를 바르고 나면 완성된다.
채상은 크기를 달리하여 작은 것은 목고(木枯) 칫수로부터 크게는 농(籠)의 구실을 할 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포개어 세 개일 때는 삼합(三合)이라 부르고 다섯 겹이면 오합(五合)이라고 한다. 오합의 경우 가장 큰 것을 대자라 부르고 차례로 거스름, 보통되자, 해웅이라 일컫는다. 또 겉짝은 속짝보다 커서 겉짝이 속짝 바닥까지 덮이도록 마련하여 작게는 실에서부터 크게는 천이나 옷을 담는 데 쓰이고 값이 고리와 달리 비쌌으므로 부유층에서 많이 쓰였다.
도구로는 등이 두껍고 날이 일직선인 뜨는칼과 날이 곧은 훑는칼 및 두 개의 칼날을 좁게 맞대어 나무토막에 꽂아 놓은 조름칼과 조름 썰 때 대올을 누르는 누짐대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밖에 대를 훑을 때 무릎에 대는 쇠가죽인 물갓이 있고 그것을 올려놓는 헝겊 방석과 대테를 맬 때 쓰일 송곳, 물대칼, 더벅이 있다.
공정은 통대를 1∼2m 길이로 잘라 3mm 정도의 너비로 쪼개어 표피와 내피를 가르는 겉목뜨기를 하고 물을 들이고 상자를 절고 꾸미는 순으로 이루어진다. 죽을 종이처럼 엷게 가다듬는 일과 그것을 비단결처럼 저며 줄무늬를 비롯하여 네모방울무늬, 방울십자무늬, 완자난간무늬, 완자발무늬, 도트마리무늬, 수복강녕 등의 여러 기본무늬에 그 변형까지를 곁들인 수십 종의 무늬를 적절히 포치하는 데는 오랜 숙련을 필요로 한다. 채상은 본래 대올뜨기와 절기를 각기 맡아서 하는 분업으로 이루어졌다.
채상장-서한규 채상장-서한규 채상장-서한규 채상장(상자짜기) 상자짜기 채상장 채상장 상자짜기 바닥절기 대훌치기 채상장 채상 조름칼질 채상 걷목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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