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96호 경주읍성

오늘의 쉼터 2008. 2. 15. 15:01


종     목 사적  제96호
명     칭경주읍성(慶州邑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7,557㎡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북부동 1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국유,공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경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였다. 주로 중심이 되는 지방도시에 읍성을 쌓았으므로 경주에 읍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동경통지』에 고려 우왕 4년(1378)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처음 이 성이 만들어진 것은 그 이전의 일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지금의 읍성은 조선 전기에 다시 짓고,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10년(1632)에 동·서·북문을 만들면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규모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 둘레가 약 1.2㎞, 높이가 약 4m 정도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어 그 문을 통해 출입을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도시계획으로 경주시가 확장되면서 성이 대부분 헐리고 현재는 동쪽 성벽 약 50m 정도만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4문 가운데 남문인 징례문에 걸려 매일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전문설명


이 성< 城 >의 정확한 축조연대< 築造年代 >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高麗時代 > 쌓은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즉 고려 우왕< 禑王 > 때 개축< 改築 >했다는 기록과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에 왜군< 倭軍 >에게 이 성을 빼앗겼을 때 당시 이장손< 李長孫 >이 만든 일종의 포< 砲 >인 비격진천뢰< 飛擊震天雷 >를 사용하여 다시 찾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朝鮮時代 >에는 둘레가 약 1.2km, 성벽높이 약 4m에 달했고, 동서남북에 향일문< 向日門 >, 망미문< 望美門 >, 징례문< 徵禮門 >, 공진문< 拱辰門 >의 4대문< 四大門 >이 있어 이들 문을 통해 출입하였다. 특히 남문인 징례문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國立慶州博物館 > 종각< 鐘閣 >에 걸려있는 신라< 新羅 >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鐘 >이 매달려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은 이 읍성< 邑城 >이 경주시가지의 발전에 따라 대부분 헐려나가고 동벽< 東壁 >만 약 50m 정도 옛 모습을 남기고 있다.




경주읍성성벽(동부동2-8번지)

성벽

성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