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북정리 무덤들과 얕은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있는 무덤들이다. 높은 지역에는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들이 모여있고 낮은 지역에는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들이 모여 있어 북정리 무덤들과 같은 분포상태를 보여준다.
1990년에 모두 30여 기의 무덤을 발굴 조사하였는데, 제1호 무덤만이 대형무덤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형무덤이었다. 그 가운데 높은 지역의 무덤은 구조나 출토된 유물이 북정리 무덤들에서 발견된 유물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또한,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다른 형태의 항아리로 만든 옹관(옹관묘)이 발견되어 주목된다.
출토되는 유물 중 토기는 북정리 무덤들이나 경주지역에 있는 대형무덤의 후기에 나타나는 특징을 가진 것이 많다.
신기리 무덤들은 6세기∼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신라무덤으로, 가야와 신라의 문물교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전문설명
신기리 고분군은 북정리 고분군과 동북쪽으로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포하고 있는데 해발 60∼80m 지점과 30∼40m 지점에 나누어져 군집하며 지형상 높은 곳에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축조된 고분들이 분포하고 낮은 곳에는 이른 시기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동쪽 정상부에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성이 있고 남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중부동 고분군이 위치하는 등 주변에는 신라시대에 형성된 유적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 양산시의 중심지는 이 고분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낮은 평야지대이며 그 밖으로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남해안과 만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은 이 지역 고분군 형성에도 적지 않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며 그 문화내용은 당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의식활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 고분 조사연구는 가야와 신라의 문물교류는 물론이고 신라 주변지역과 중앙과의 문화 비교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신기리 고분군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1990년 일부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가 나와 있다. 이 고분들은 등고선과 장축을 나란히 하고 있는데 경사면을 평탄하게 만든 다음 생토층면을 파서 등고선과 나란하게 묘갱을 설치하고 있다. 이들은 유구의 구조에 따라 단곽식과 다곽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단곽식의 석실은 북쪽 단벽을 입구부로 삼고 상면 중앙에 시상관대를 갖춘 석실분이 대부분이다. 석실은 평면 장방형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며 입구는 북쪽 단벽에 배치되고 유구의 대소에 따라 광석(광石)의 높이도 다르다. 그러나 신식의 고분인 경우는 석실이 지상에 설치되고 입구도 남쪽 단벽에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또 상면 축조의 경우 중앙에 설치된 관대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공간을 두어 유물을 배치하고 있는데 머리쪽으로 추정되는 구석 단벽 아래는 고배와 같은 소형유물을 부장하면서 시기에 따라 점차 그 폭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반대쪽인 입구 단벽 아래 공간에는 대형의 호형토기가 집중적으로 부장되어 폭이 넓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곳의 고분은 추가장의 형태가 복수매납이 전제된 단곽식(單槨式)과 동일 봉분내에 매장하는 다곽식(多槨式)으로 나눌 수 있고 단곽식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2차장이 예상되는 점도 있다. 그리고 이 고분의 마지막 단계는 입구를 남쪽으로 하고 지사에 석실을 구축하는 횡구식 석실분이 등장하면서 단각고배와 이단구연유대장경호를 사용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금동제관식편·교구·대선금구·철부·철겸·소도자·철도·유대장경호·단경호·고배·파배·방추차·곡옥·관옥 등이 출토되었는데 금동제관식편은 인접한 부부총이나 금조총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특징을 지닌 것이고 토기는 인접한 북정리 고분군은 물론이고 경주지역 적석목곽분의 후기에 나타나는 특징을 가진 것이 많지만 전형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신기리 고분군의 축조연대는 6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축조된 신라고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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