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78호 나주 덕산리고분군 <해제>

오늘의 쉼터 2008. 2. 14. 15:59


종     목 사적  제78호
명     칭나주덕산리고분군(羅州德山里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58,124㎡
지 정 일 1963.01.21 ~ 2011.07.28
소 재 지 전남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473
시     대백제
소 유 자공유, 사유
관 리 자나주시

일반설명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일대에 모여있는 삼국시대의 무덤들이다. 자미산에서 동남쪽으로 돌아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위에 10기가 있었는데, 6·7·8호 무덤은 현재 무덤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고 1·2·3·4·5호 무덤만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들 무덤은 삼국시대의 독무덤(옹관묘)으로서 하나의 봉분 안에서 여러 개의 독무덤이 발견되며, 2∼3개의 큰 항아리를 맞붙여 관을 만들었다. 철촉·은방울·유리구슬·구리팔찌·금제품 등의 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무덤의 주위를 둘러싸는 도랑(주구)이 발견되어, 무덤의 형태를 잃은 6·7·8호 무덤도 도랑이 남아 있다면 무덤의 평면형태와 규모가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무덤들은, 6세기 중엽 만들어진 반 지하식 돌방무덤(석실분)인 10호 무덤을 제외하고 5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가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마한의 세력자 무덤으로 추정되며, 10호 무덤과 같은 석실분은 백제의 세력이 이 지역까지 확장하여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한 인접지역 고분군 통합 ※ 재지정 : 사적 제513호 '나주 반남 고분군'


전문설명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일대에 군집되어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표고 98.3m의 자미산에서 동남쪽으로 돌아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상에 10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6·7·8호분은 분구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인멸된 것으로 알려져왔고 1·2·3·4·5호분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1호분은 1918년에 조사되었지만 조사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행정구역은 덕산리에 속하지만 신촌리 1호분과 접해 있으며 1986년에 직경 9∼11m, 높이 1.6m 규모의 타원형으로 정비 복원되었다.

2호분은 1939년에 조사되었는데 길이 28m 내외 규모의 장방형으로 복원되었다. 1939년의 조사에서는 매장시설은 밝혀지지 않았고 봉토에 혼입된 마제석촉 1점만이 출토되었을 뿐이다.

3호분은 1939년에 조사되었는데 거대한 주구를 가진 직경 45m 내외의 분구 안에서 3기의 옹관과 함께 몇 점의 토기와 철촉·은방울·유리구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986년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직경 44∼48m, 높이 8m 규모의 타원형 분구와 주구가 복원되었다.

4호분은 1917년에 조사되어 그 내용의 일부가 알려져 있다. 직경 28m 내외의 원형 분구 위쪽에 옹관 2기가 안치되어 있고 몇 점의 토기와 함께 대도(大刀)·철촉·도자·철부·구리팔찌·유리옥 등이 출토되었다. 4호분은 1993년 정비되었는데 직경 26∼28.6m, 높이 8.2m 규모의 원형으로 복원되었다.

5호분은 1938년에 조사되었는데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분구 정상부에 7개의 도굴갱이 뚫려 있고 도굴시 대도·금제품·옥류 등이 나왔다고만 전해지고 있다. 1993년 정비되었는데 직경 37.6∼42.4m, 높이 10.75m 규모의 타원형으로 복원되었다.

6호분은 이미 인멸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96년 정비시 간단한 시굴조사를 통해 주구가 확인됨에 따라 직경 18m 규모의 원형으로 복원되었다. 따라서 분구가 이미 인멸된 7·8호분도 주구가 남아 있다면 평면형태와 규모가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0호분은 1996년 정비시 간단한 시굴조사를 통해 직경 16.5m 크기의 원형임이 밝혀졌고 내부시설은 반지하식 석실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덕산리 고분군의 분구 형태는 원형·방대형·장방형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원형이다. 규모는 직경 10m 내외(1호분)에서 45m 내외(3호분, 5호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대부분 분구 주변에 주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매장시설은 대부분 여러 개의 옹관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10호분과 같은 석실분도 섞여 있다. 덕산리 고분군은 2호분과 같은 장방형도 있지만 대부분 원형이고 옹관 이외에 석실도 섞여 있어서 반남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되며 중심연대는 5세기 말경으로 판단된다.

대안리 고분군, 신촌리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덕산리 고분들은 백제의 진출 이전에 자리잡고 있었던 토착 마한 세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10호분과 같은 석실분은 6세기 중엽에 들어와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나주덕산리고분군

나주덕산리고분군전경

나주덕산리고분군전경

나주덕산리3호분정비상태

나주덕산리고분군